의학·과학 >

[책과 함께 떠나는 과학여행] ④ 미술관에 간 화학자



렘브란트의 ‘야경’은 원래 밤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대낮을 그린 것이다. 하지만 ‘야경’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이유는 그림이 그려진 지 100년이나 지나서 군대나 경찰이 야간 순찰을 하던 18세기에 이르러 어둡게 변한 그림을 보고 추측해 붙여진 것이다.

누구도 손대지 않았는데 대낮을 그린 그림이 왜 밤으로 바뀌었을까. 비밀은 바로 화학에 있다. 렘브란트는 이 그림에서 선홍색의 ‘버밀리온’이란 물감을 사용했는데 이를 화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납과 황 성분이 검출된다. 납과 황이 결합하면 황화납(PbS)이 되어 공기 중에서 검게 변하는 ‘흑변 현상’을 일으키게 된다.

결국 대낮을 그린 렘브란트의 그림이 ‘야경’이라는 제목을 달게 된 미술사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 역시 결국은 화학에 기인한 셈이다.

이러한 흑변 현상은 밀레의 ‘만종’에서도 나타난다. 만종을 보면 어둑한 황혼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는 밀레가 쓴 물감이 공기 중에서 공해의 주범인 아황산가스와 반응하면 검게 변하는 성분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에 담긴 내용 중 일부다. 이 책의 저자는 홍익대학교 화학시스템공학과 전창림 교수다. 예술가가 아닌 화학자가 미술에 대한 책을 쓴다는데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미술은 화학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수도 있다. 그림의 표현 매체인 물감이 다름 아닌 ‘화학 물질’이며 캔버스의 물감이 마르고 발색하고 퇴색하는 모든 과정은 ‘화학 작용’이기 때문이다.
즉 미술의 매체가 되는 물감이 제조되고 쓰이고 보존되는 과정 모두가 화학인 셈이다.

미술의 태생적 연원이 화학이라면 화학을 과학의 카테고리에서 꺼내 예술의 세계로 인도한 것은 미술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는 화학을 통해 세계적인 명화의 숨겨진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 내는 책이다.

/talk@fnnews.com 조성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