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디플레이션으로 향하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첫 희생양은 일본이 될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지가 보도했다.
‘잃어버린 10년’에 이어 지난 1999∼2005년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을 겪은 일본은 최근 수년간의 반짝 회복을 뒤로 하고 다시 디플레이션 나락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식료품 등 가격변동이 심한 품목을 제외한 물가지수인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 움직임은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으로 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높이고 있다.
도쿄 지역의 10월 근원 CPI는 7개월 연속 완만한 상승 흐름을 뒤로한 채 정체상태에 빠졌다. 9월 일본 전국 물가 역시 답보상태를 기록했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오는 2010년 3월 마감하는 2009 회계연도 근원 CPI 예상치를 0%로 수정했다. 올 회계연도 근원물가 상승률 전망치 1.6%를 뒤로 한 채 다시 경제가 정체 상태에 빠질 것이란 전망이다.
메릴린치의 오쿠보 다쿠지 이코노미스트도 2009 회계연도 일본 근원물가지수가 0.4% 하락해 일본 경제를 디플레이션 상태로 몰아갈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위원을 지낸 다이와연구소의 다야 데이조 고문은 미국이 일본식 디플레이션을 겪을 것이라는 일부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 그는 일본의 경우 호황기에 기업이윤이 늘었음에도 저비용 유지와 중국 등 경쟁국과의 경쟁을 위해 근로자 임금은 정체상태에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임금이 오르지 않음에 따라 소비가 위축되고 결국 디플레이션 악순환을 불렀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미국이나 유럽은 지금껏 임금이 상승추세를 보였기 때문에 몇 년간 경기둔화가 지속된다 하더라도 일본식 디플레이션 함정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현재 정체 상태에 빠져 있는 물가로 인해 일본 기업들은 진퇴양난에 빠진 상태다. 대표적인 일본 맥주업체인 삿포로 홀딩스는 경기둔화와 고령화로 인해 지난 10년간 매출이 큰 폭으로 줄었다.
매출 확대를 위해 값을 낮춘 새 상품을 내놓았지만 수요가 뒷받침이 안 되면서 도리어 매출과 평균 판매가격만 떨어뜨리는 꼴이 됐다. 수요도 꾸준히 줄어 10년 전에 비해 3분의 1이 감소했다.
삿포로는 부동산 사업과 해외진출 확대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치솟던 휘발유 값도 국제유가 하락과 함께 떨어지기 시작해 지난 8월 최고치 대비 16% 급락했다.
아파트 역시 팔리지 않는 물량이 늘면서 임대료가 9월 현재 전년 동월비 0.1% 감소세로 돌아섰다. 최근의 완만한 상승세가 다시 역전된 것이다. 또 종이값, 펄프값 상승에도 불구하고 일회용 기저귀 값은 지난 9월 5% 떨어졌다.
/dympna@fnnews.com 송경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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