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주식투자로 현재 화폐가치로 3000억원이란 거금을 벌어들인 최고의 주식투자왕 조준호를 아시나요.
일제 식민치하의 국내 증권시장에서 300만원(현재 가치 3000억원)의 수익을 거둬 해방 이후 명동에 사보이호텔을 세운 조선인 주식투자의 ‘달인’ 조준호에 관한 이야기가 한국증권업협회의 ‘이야기로 보는 한국 자본시장’에서 소개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증협이 창립 55주년을 맞아 9일 발간한 이 책자에서는 광복 이틀 전인 1945년 8월 13일까지 운영된 일제강점기의 증권시장인 ‘조선취인소’에서 조선인 조준호가 가장 큰 부를 쌓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증권거래소 형태인 조선취인소는 1932년 경성주식현물취인시장과 인천미두취인소를 합병한 일본인에 의해 세워졌다. 서울(당시 경성) 명동에 본점을 두고 유가증권시장을, 인천에 지점을 두고 미두시장을 개설했다. 당시 조선취인소의 증권 발행과 유통은 일본경제권에 편입돼 이뤄졌고 거래된 주식의 주요 종목도 대부분 일본 주식이었다.
1938년 당시 조선취인소에서 거래된 284개 종목 중 일본주식이 201개였으며 총 납입자본금 1억원 중 일본계 자금이 유입된 82곳의 자본금이 8800만원에 달했다.
갑부 조중정의 장남으로 태어나 도쿄 중앙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유학 등을 한 조준호는 조선윌사석유회사와 동아이발기구 주식회사를 설립, 사업가로서 변신했다.
1934년에는 동아증권을 설립하고 명동에 점포를 내면서 증권업계로 사업범위를 넓혔다. 동아증권은 일본인 중매점에 맞서 각지에 통신망과 연락망을 갖추고 도쿄와 오사카 주식시장 시세를 빨리 전달한 덕분에 설립 첫해부터 명동 제일의 중매점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 결과 조선취인소 설립 이후 광복 직전까지 전체 매매고의 10% 이상이 동아증권을 통해 이뤄지게 됐다. 조준호는 미두취인점까지 차려 40여개 거래점과 경쟁해 6개월 만에 인천미두시장 전체 매상의 30%를 차지하더니 2년 후에는 60%를 장악했다.
직접 투자에도 나서서 주식이 폭락하는 투매장에서 매물을 거둬들였다가 급등장에서 엄청난 차익을 거둬 조선취인소에서 300만원을 벌어들였고 이를 발판으로 사업을 키워 사보이호텔을 설립하기도 했다.
/mchan@fnnews.com 한민정기자
■사진설명=조선취인소 입회 장면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