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원망하지 마라”는 뜻을 기려 우리 사회가 이념과 갈등, 분열의 벽을 넘어 대화합의 계기가 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 회원 및 경남 김해 봉하마을 주민 등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노동계는 이번 주 예정된 대규모 대정부 집회를 노 전 대통령 영결식 이후로 잠정 연기했다.
노사모 사이트에 글을 올린 한 회원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난이 노 전 대통령을 위한 길이라는 그릇된 생각은 버리자”며 “노 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그를 사랑하는 우리의 그릇도 커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화합을 당부했다.
또 다른 회원도 “‘노짱’은 그들에게도 대통령이셨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조문이라도 그분은 하늘에서 이미 껄껄 웃으시며 절을 받아주실 것”이라며 “조문 거부가 갈등의 양상으로 부각되는 것이 보기 좋지 않다”고 우려했다.
노사모 회원 백창기씨(52·서울 잠원동)는 “대통령으로서 정말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분의 유언이 ‘원망하지 마라’였듯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빈소가 마련된 봉하마을 대통령 생가 이웃 주민 박석동씨(59)는 “대통령을 어릴 때부터 봐 왔지만 자기 욕심을 먼저 챙기는 사람이 아닌 데다 워낙 배경이 없고 어렵게 크다 보니 권력을 쥐고서도 누굴 윽박질러 돈을 챙길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면서 “그런 따뜻한 마음과 고인의 뜻을 받들어 갈등을 씻고 화합하는 길로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강원도 원주에서 조문을 온 김지영씨(50)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대통령을 지낸 분이 바위에서 뛰어내렸겠느냐’ 하는 마음에 단숨에 달려와 골목에서 자리를 깔고 새우잠을 잤다”면서 “고인이 된 대통령의 그 고운 마음을 좇아 분열보다 화합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계 인사들도 국민적 비극을 국난 극복의 힘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현석 대한상공회의소 전무는 “경제난국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모두가 애를 쓰고 있는데 노 전 대통령 서거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며 “경제계는 힘든 상황일수록 투자에 적극 나서고 고용 유지에 힘써 경제 살리기에 더욱 매진하는 등 모두가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정치권도 전직 대통령의 안타까운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갈등을 부추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우리 사회가 화합의 전기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현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불행한 일을 계기로 그동안 우리 사회가 이념과 다양한 생각 차이로 갈갈이 찢기고 상대방 주장을 배척하는 풍토에서 벗어나 서로를 배려하는 민주정치가 필요하다”고 정치권의 모범을 주문했다.
그는 “국민들도 법을 존중하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가 믿고 신뢰하는 것은 법밖에 없는 만큼 법 질서를 존중하고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해야지 폭력에 호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과격행동 자제를 촉구했다.
김 회장은 일부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보수 정치인 등의 조문을 막는 데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허영엽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통해 국론이 분열되거나 사회적 갈등이 커진다면 그것은 분명 고인의 뜻이 아닐 것”이라며 “누군가 이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기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죽음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 신부는 또 “노 전 대통령 서거를 통해 국민이 바라는 것은 대한민국에 더 이상 불행한 대통령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라며 “비통하고 비극적인 이 죽음이 부디 증오와 분열의 악순환을 끊고 사회 갈등을 치유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고 밝혔다.
한편 민노총은 추모 분위기를 고려해 25일 열린 산별대표자회의에서 이번 주 예정됐던 민노총 차원의 대규모 집회를 노 전 대통령 영결식이 치러지는 29일 이후로 연기했다.
이에 따라 27일로 예정됐던 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와 철도본부의 대규모 집중투쟁은 30일로 연기됐다.
/사회부
■사진설명=지난 24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 앞에서 국화꽃을 든 시민들이 분향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3일째인 25일에도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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