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기까지 지난 10일부터 숨죽이는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지난 10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교착 상태에 빠진 대북관광 사업 및 남북 경협의 정상화와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석방을 논의키 위해 방북길에 올랐다. 이후 현 회장은 무려 다섯 차례의 방북 일정 연장 끝에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갖고 남북 경협 정상화를 위한 포괄적 합의를 일궈 냈다.
현 회장의 김 위원장과 이번 만남이 네 번째다. 현 회장과 김 위원장의 만남을 통해 과거 남북한 고위급 만남 중에서 가장 긴박하게 일궈 냈다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현 회장은 이번 방북 과정에서 136일간 북한에 억류됐던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44)의 석방에 큰 공을 세웠다. 현 회장이 방북 하루 뒤인 지난 11일 유씨가 곧 석방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고 이틀 뒤인 13일 오후에 유씨가 전격 석방됐다.
현 회장은 유씨가 석방되기 하루 전인 지난 12일에는 북한의 대남 협력창구인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만찬을 겸한 대담을 가졌다.
현 회장이 면담을 기대했던 김 위원장은 이날 함경남도 함흥에서 자신의 생모 명칭을 딴 김정숙 해군대학을 시찰하고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연극 ‘네온등 밑의 초병’이라는 연극까지 관람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 회장이 유씨를 데리고 13일 오후에 남측으로 내려올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정작 유씨는 조건식 현대아산 사장과 함께 남한으로 돌아왔다. 현 회장은 그 대신 유씨가 석방되던 13일 오전 북한에 2차 체류 연장을 했다.
현 회장은 남측 정부가 해내지 못한 유씨 석방을 단번에 이뤄 냈다는 점에서 사실상 정부 특사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얻기 시작했다.
광복절 전야인 지난 14일에는 현 회장이 김 위원장과 만남을 가졌을 것이라는 추측이 계속됐다. 또 현 회장이 김 위원장에게서 남측 정부에 전달할 메시지를 들고 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이튿날 광복절에 남북한이 평화를 위한 공동발표를 할 것이라는 추측도 계속됐다. 하지만 이날 김 위원장은 강원 원산 송도원 청년야외극장 지도에 나섰다고 북측에선 보도했다.
광복절인 15일에는 현 회장이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들고서 서울로 돌아와 사실상 ‘광복절 특사’가 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다시 북한 체류 4차 연장을 했다. 이날 연장 신청은 기존의 세 번의 연장신청과 달리 귀경 예정시간을 훌쩍 넘긴 뒤였다.
이를 두고 북한이 이날 오전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의 수위를 지켜보고서 현 회장에게 최종 메시지를 보내려는 과정에서 늦어지고 있다는 추측도 나왔다.
이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대화 테이블로 돌아오면 다방면에 걸친 지원을 하겠다”는 포괄적인 대북 제안을 제시했다. 만약 북측이 이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만족하지 못할 경우 현 회장 일행은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갖지 못한 채 귀경길에 올라야 한다. 이 경우 현 회장의 귀경시간은 좀 더 빨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북한이 136일째 억류했던 현대아산 직원의 석방일도 당초 예상됐던 10일에서 13일까지 최대한 뜸을 들여 결정한 점을 들어 현 회장과 김 위원장 간의 만남도 막판에 이뤄질 가능성이 계속됐다.
당초 2박3일 일정으로 방북길에 올랐던 현 회장의 일정이 7박8일로 늘어나자 막판까지 온갖 추측이 그동안 난무했다.
금강산, 개성관광 재개 등을 둘러싸고 관광객 사고 및 근로자 억류 재발 방지와 유감 표명 수위 등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막판까지 면담이 늦춰졌다는 설도 계속됐다. 하지만 현 회장은 다섯 차례의 끈질긴 북한 체류 연장 신청을 통해 16일 김 위원장과 만남을 일궜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기자
■사진설명=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16일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을 가졌다. 현 회장(왼쪽 세번째)이 지난 2005년 7월 강원도 원산에서 김 위원장과 첫 만남을 큰딸 정지이 U&I 전무(여섯번째), 김윤규 현대아산 전 부회장(다섯번째)과 함께 갖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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