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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피용 대출·가짜 차용증..강남 투자자 ‘편법 백태’



국세청이 치솟는 집값을 잡기 위해 서울 강남권 아파트 매수자들을 대상으로 자금출처조사 등 강력한 ‘압박’에 들어가면서 투자자들과 세무당국 간에 ‘머리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강남권 아파트 투자자 가운데는 실수요자가 아닌 투자자들이 대부분으로 변호사, 통역사, 의사 등 소득이 불투명한 자영업자가 많기 때문이다. 그동안 신고하지 않은 소득이 탄로날 경우 과징금을 물어야 하는 것은 물론 탈세혐의로 조사를 받거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자금출처조사를 피하기 위해 실제 보유자금이 충분한데도 은행 등으로부터 대출을 받거나 매입한 부동산에 대해 명의변경을 하는 등 갖가지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

■자금출처조사 ‘면피’ 위해 대출받고

9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101㎡를 구입하려는 조모씨(44세)는 매수금액 10억원 중 5억원은 현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가짜로’ 돈을 빌리기로 했다. 은행에서 3억원을 대출받고 나머지 2억원은 지인에게 빌리는 형식으로 차용증을 쓰기로 한 것. 이를 위해 조씨는 자신의 돈을 지인의 계좌에 미리 입금해 놓고 빌리는 형식으로 ‘돈세탁’을 마쳤다. 중국을 오가며 통역일을 해 온 조씨는 실제론 현금 10억원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조씨는 “통역업무로 받는 돈의 일부가 원천징수를 거치지 않고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 전문가들로부터 대출이나 차용 등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라는 조언을 받았다”면서 “다소 번거롭긴 하지만 자픔출처조사는 일단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했다.

‘가짜 차용증’이 부담스러운 투자자들은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기도 한다.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적용, 집값의 40%를 대출받았지만 탈세혐의를 받을 것이 두려워 대출금을 최대한 높이고 있는 것. 대출금리가 현재 연 7%대에 달해 부담스러운 제2금융권 대출은 고소득직종이면서도 소득신고액이 적은 투자자들이 이용하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의 K공인 관계자는 “단기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의 경우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도 자금출처조사가 두려워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더 받도록 조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계약 취소하고, 명의변경하고

아예 매매계약을 취소하거나 명의를 변경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타인 명의로 고가 아파트를 사들이다 적발될 것을 염려해 아예 발을 빼는 경우다. 서초구 서초동에서 10년간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했던 오모씨(56)는 대학을 갓 졸업한 아들 명의로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아파트 53㎡를 매입키로 하고 계약금으로 집주인에게 1억2000만원을 줬으나 최근 직접 계약하는 대신 미등기 전매하기로 했다. 계약을 취소하면 계약금을 날릴 수밖에 없자 오씨는 중개업자에게 미등기 전매 방식으로 계약을 변경해 달라고 요구했다. 자금출처조사에 걸리면 자칫 증여세와 과징금까지 물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최근 재건축 가격이 급등하면서 미등기 전매자를 구해 오씨는 계약금을 날리지 않고 포기할 수 있었다. 그는 “아들 재산증식 용도로 덜컥 계약했지만 앞으로 수입원을 증명하기 어려울 것 같아 결국 미등기 전매키로 했다”면서 “내 명의로 변경할 수도 있지만 앞으로 증여세 인하 등 기대하는 정책이 나올 경우 쉽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물려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선 부동산중개업소에선 정부 당국이 이렇게 자금출처조사를 벌여도 이를 피하기 위한 편법이 활개를 치고 있어 투기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2006년에도 강남권 재건축아파트 투자자를 대상으로 세무조사와 자금출처조사 등을 벌였으나 투자자들의 ‘머리싸움’에 밀려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개포동의 S공인 대표는 “2006년 정부 단속 때 이미 대출과 차용증, 명의변경 등 다양한 학습효과가 생겨났다”면서 “합법적인 대출제도를 이용해 편법으로 소득증명 등을 하기 때문에 세무당국에서 이를 적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cameye@fnnews.com 김성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