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의 르네상스.’ 박창일 연세대의료원장은 최근 세브란스병원에 대한 주변의 평가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 병원은 국내 최초로 국제의료기관평가(JCI)인증, 로봇수술 도입 후 아시아 로봇훈련센터 개소 등 선진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 또 지난해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로 ‘대통령의 병원’으로 세계 언론에 등장했으며 존엄사 문제로 이슈의 한가운데 있었다. 지금까지 쉼없이 달려온 연세대의료원이 2020년 장기발전계획을 향해 올해 첫 발을 내딛는다. 박창일 연세대의료원장에게 의료원 청사진에 대해 들어봤다.
―연세대의료원이 국내 선도병원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연세대의료원에 대해 소개해 달라.
▲연세대의료원의 뿌리는 1885년에 설립된 광혜원과 제중원이다. 알렌 박사가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을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4대 병원장인 에비슨 박사가 한국에 병원을 짓는 명목으로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세브란스씨’에게 3만5000달러를 기부받아 1902년 제중원을 새로 지었다. 이때 이름을 ‘세브란스씨 기념병원’으로 바꿨다. 연세대의료원의 역사는 제중원이 설립된 1885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125년을 맞는 셈이다. 현재 의료원 산하에 의과대학, 치과대학, 간호대학, 세브란스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광주 정신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 치과대학병원 등을 두고 있으며 8000여명의 교직원이 근무하는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했다.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의료산업을 선도하며 해외환자를 유치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제중원의 역사를 두고 서울대병원과 연세대의료원의 입장이 다르다.
▲한국교회연구소에 소장돼 있던 1902년 당시의 제중원 정초식 초청장이 최근 발견됐는데 이에 따르면 ‘제중원(세브란스씨 기념병원)’이라고 명시돼 있다. 서울대병원은 제중원이 왕립병원이었기 때문에 관계가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에비슨 선교사의 기독교 정신을 이어받은 세브란스의 모태가 바로 제중원이다. 또 에비슨 박사는 세브란스 의과대학 교장이면서 연희전문학교 교장을 18년간 역임했다. 이 때문에 의료와 교육이 동시대에 시작된 것이다. 이 역사는 우리나라 개화기 역사와 일맥상통한다.
―병원 경영철학은.
▲연세의료원은 기독교 병원이다. 알렌 박사나 에비슨 박사는 고종 황제의 어의를 지냈다. 하지만 백정을 치료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의대 1회 졸업생 7명 중 박서양이라는 사람이 있었던 것을 봐도 신분 차별을 두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졸업생 중 6명이 독립운동가로 활동해 추서를 받았다. 세브란스의 정신은 기독교의 사랑, 개척, 국가를 구하려는 봉사를 담고 있다고 보면 된다. 아직도 이 정신은 살아있다.
―신년사에서 2020년 장기발전 계획을 내놨는데.
▲앞으로 연세대의료원을 세계적인 의료기관으로 발돋움시키는 게 목표다. 2020년 장기발전계획을 거기에 맞춰 잡고 있다. 우선 인천 송도에 있는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에 국제병원을 설립할 계획이다. 이 병원을 통해 해외환자 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의료산업을 선도할 계획이다. 두번째로 경기 용인에 짓는 용인세브란스병원을 확장해 경기 남부에 최상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세번째로 세브란스병원에 11만5703㎡(3만5000평) 규모의 암센터를 2월 착공한다. 마지막으로 3만6363㎡(1만1000평) 규모의 연구센터를 지어 맞춤형 신약 개발에 착수할 계획이다.
―국제병원의 역할은.
▲송도 국제병원의 설립 파트너인 MD앤더슨암센터는 신약개발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앞장서 있는 병원이다. 이 병원과 전임상시험센터를 만들어 신약개발 과정을 같이 진행할 예정이다. 미국식품의약국(FDA) 수준의 신약임상센터를 설립해 국내 신약개발을 선도할 계획이다.
―국제진료센터를 국내 처음으로 오픈한 후 해외환자 유치에도 힘쓰고 있다. 앞으로 계획은.
▲지난해 기준 약 2만8000명의 해외환자가 세브란스병원을 다녀갔다. 지금은 30%가량 늘었다. 세브란스병원만 놓고 보면 5년 내에 10만명 정도 유치하는 게 가능할 전망이다. 송도 국제병원이 오픈하고 7∼8년이 지나면 20만명 유치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암전문병원은 어떻게 차별화 하나.
▲암센터는 2013년 완공할 계획이다. 40년 전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암센터를 오픈했기 때문에 지금은 시설이 많이 노후됐다. 하지만 암 환자 진료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다. 또 로봇수술을 도입한 데다 토모테라피 등 첨단장비도 잘 갖춰져 있다. 암센터가 완공되면 맞춤형 암 진료를 실시하게 된다. 사람마다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 따른 암 치료 계획이 세워지고 치료약도 투여해야 한다. 또 암 환자들이 치료받으면서 통증은 물론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전인치료를 할 계획이다. 질병만 치료하는 게 아니라 심리까지도 돌보겠다는 것이다.
―JCI 재인증은 언제 받나.
▲올해 4월에 받는다. JCI는 산업체에서 ISO인증을 받는 것처럼 병원 시스템이나 시설이 국제 규격을 갖추고 있느냐를 평가하는 것이다. 2007년 도입 이후 의료사고가 3분의 1로 떨어졌다. 올 4월에는 본부에서 마지막 재인증을 한다. 인증 이후 품질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지난해 세브란스병원이 언론에 많이 노출됐다. CNN 등 세계 언론에 노출된 후 병원 브랜드 가치가 올라갔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세계재활학회 회장을 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 의사들이 얼굴을 많이 알고 있다. 이후 국제 회의에 갔더니 CNN이나 세계 각 나라 뉴스에서 세브란스병원을 봤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세브란스병원이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등 병원의 실력을 믿고 찾아주는 전직 대통령이 많다는 데 더 자부심을 느낀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음식조절과 숙면을 취하는 것이다. 과식하지 않으며 채소 종류를 많이 그리고 골고루 먹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바빠서 잘 하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한 번에 30분 이상, 1주일에 3번 이상 걸으라고 조언한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 필드하키 선수로 뛰었기 때문에 건강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편이다. 하지만 계속 유지하기 위해 식사를 조절하고 있다.
■ 박창일 연세대의료원장은
박창일 연세대의료원장이 최고경영자(CEO)로서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것은 2005년 2월부터 2008년 7월까지 재직한 세브란스병원장 때다.
당시 그는 국내 의료기관 최초로 국제의료기관인증(JCI)을 받으면서 국내 의료기관의 선진화를 선도했다. 이어 로봇수술을 도입하는 등 세브란스병원을 공격적으로 경영했다. 대외적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벌여 한국인 처음으로 '세계재활의학(ISPRM) 회장'에 취임해 2007년 세계재활의학회 서울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2008년 8월 연세대의료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올해 신년사에서 2020년 장기발전계획을 내놓고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연세대의료원을 세계적인 의료기관으로 발돋움시키기 위해 첫 발을 내디뎠다.
그는 최근 CEO 특강에서 "(경영인은) 뭐든 잘 들을 줄 알아야 하고 정확한 판단력이 필요하다"며 경영에 있어서 경청과 판단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얼굴에 항상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는 그가 경청과 빠른 판단력으로 '세브란스병원의 르네상스'를 넘어 '연세대의료원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갈지 주목된다.
△64세 △인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연세대학교 대학원 의학과 박사 △연세대학교 의학대학 재활의학과 교수 △독일 뮌헨대학 소아센터,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척수손상센터 연수 △연세의대 재활의학연구소 소장 △연세의료원 기획조정실장 △대한재활의학회 이사장 △세브란스 새병원 건립 추진위원회 위원장 △세브란스병원장 세계재활의학회(ISPRM) 회장 △연세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