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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재고자산관리 제대로 못했다

#외환위기 전운이 감돌던 1997년. 삼성전자는 전 세계에 걸쳐 갖고 있던 재고 채권 9조여원을 6조원으로 감축하는 작업을 최우선으로 단행했다. 당시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무수익 부실 자산을 1조원 이상 매각하기도 했다. 이처럼 발 빠른 재고자산 정리는 오늘의 삼성전자를 있게 한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의 대표 기업들은 재고자산관리를 잘하고 있을까?"

지난해 국내 30대 상장기업들의 재고관리 능력이 신통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재고자산 비중은 줄어든 반면 재고자산회전율은 더 나빠진 것. 제품 생산은 줄고, 생산해 판매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이 늘었다는 얘기다.

21일 파이낸셜뉴스가 시가총액 30대 상장 제조기업들의 '2009년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재고자산회전율(Inventory Turnover Ration)은 24.61회였다.

제품을 생산해 판매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이 평균 14.82일이 걸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29.79회보다 5.18회가 더 줄어든 것이다. 재고자산회전기일도 2008년보다 2.57일이 더 걸렸다.

하지만 총자산대비 재고자산 구성비율은 2008년 8.72%에서 2009년 8.09%로 오히려 줄었다. 제품이 팔리지 않아 창고에는 물건이 쌓이고 공장에서는 물건을 만들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재고관리를 가장 잘 한 곳은 삼성엔지니어링으로 재고자산회전율이 238회로 가장 높았다.

물건이 만들어져 팔릴 때까지 걸리는 기간을 뜻하는 재고자산회전기일도 1.53일로 가장 짧았다.

한국전력공사도 재고자산회전율이 158.60회(재고자산회전기일 2.30일)나 됐다. 이어 삼성물산 44회(8.29일), LG전자 28.1회(12.98일), 신세계 22.60회(16.15일), 두산중공업 21.70회(16.82일) 등이었다.

반면 재고자산회전율이 10회 이하로 떨어지는 곳도 많았다. SK는 0.95회로 조사대상 중 가장 낮았다. KT&G, 아모레퍼시픽, 현대제철, POSCO, LG생활건강, 삼성테크윈, OCI, 롯데쇼핑, S-OIL, LG화학, LG, 하이닉스, 현대중공업, SK에너지 등도 10회 미만이었다.

재고자산관리를 잘하는 기업도 있다. 한국전력은 2008년보다 재고자산회전율이 8.80회 늘었다. LG전자(5.50회 증가), 삼성전자(2.90회 증가), 기아자동차(1.48회 증가), 삼성전기(1.10회 증가) 등도 모두 회전율이 좋아졌다.

재계 관계자는 "재고자산이 감소한 가운데 재고자산회전기일이 늘어난 것은 경기침체와 수출경기 악화로 생산이 줄어든 데다 판매되지 않아 창고에 누적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증시 전문가는 "재고자산규모가 크면 그만큼 재고관리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자산의 효율적인 배분도 어려워지는 한편 재고자산규모를 줄이기 위해 저가판매에 나서 수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서 "상장법인의 재고자산이 줄어드는 것 자체가 기업수지 개선에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kmh@fnnews.com 김문호기자

■용어설명

*재고자산회전율(Inventory Turnover Ration) = 연간 매출액을 평균 재고자산으로 나눈 것. 매출액으로 재고자산을 몇 회 소진시킬 수 있는지를 나타낸다. 회전율이 높을수록 자본수익률이 높아지고 재고관리 비용을 절약하는 이점이 있지만 과도하게 낮으면 납기까지 공급물량을 댈 수 없는 위험성도 있다.

*재고자산회전기일=물건이 만들어져 팔릴 때까지 걸리는 기간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