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1960년 최초의 호르몬 경구용피임약을 승인한 지 50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피임약은 흔히 여성이 먹는 약이었다. 따라서 피임에 실패하면 무조건 여성의 탓이었고, 약도 여성이 준비해야만 했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근본적인’ 원인인 남성이 피임할 수 있다면 제일 확실한 피임이 될 것이다. 그런데 왜 남성용 피임약은 없는 것일까.
남성용 피임약이 개발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여성과 남성의 ‘임신을 위한 기전’이 아예 다르기 때문이다. 건국대학교병원 비뇨기과 백성현 교수는 “여성의 경우 임신상태가 되면 더 이상 임신을 막도록 각종 호르몬 작용이 일어나게 된다”며 “쉽게 말해 호르몬 제제인 피임약을 복용해 몸이 임신상태인 것처럼 속이는 방식으로 피임을 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반면에 남성은 “무조건 정자가 생산되므로 이를 막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고 말했다.
을지병원 산부인과 서용수 교수는 “정자를 없애려면 정자를 직접 죽이는 약을 사용해야 한다”며 “고환기능을 정지시켜 정자를 안 나오게 하더라도 이미 기존에 생성된 정자는 계속 몇 달 동안 남아 있기 마련이므로 항암제와 같은 극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남성용 피임약을 개발하려는 연구는 진행 중이다. 서 교수는 “여성 피임약의 부작용은 미미하지만 메스꺼움, 유방통, 부종(붓기) 등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를 막기 위한 남성용 피임약으로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프로게스틴의 복합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아직 초기단계이지만 외국 연구에 따르면 이 물질이 뇌에서 고환으로 전달되는 신호를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실험 지원자의 10%에서는 아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연구 성공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의들의 의견이다. 백 교수는 “고환의 기능을 완전히 억제시키면 영구적으로 기능이 멈출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연구는 위험하고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기존 남성 피임방법이 워낙 효율적이고 간편해서 굳이 피임약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서 교수는 “정관구술, 콘돔사용 등 안전한 피임방법이 이미 있는데 굳이 약을 개발하는 것은 연구비 낭비”라고 말했다. 백 교수 역시 “정관수술은 10분이면 가능하고 복원도 수월하며 일반적인 경우에는 콘돔 사용만으로도 모든 피임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이어 “모든 의술의 첨단화나 추가연구가 반드시 필요하진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례”라고 덧붙였다.
/kueigo@fnnews.com김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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