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의 기온이 올라가면서 환경변화 때문에 ‘잡종’ 동물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지구온난화만으로도 멸종위기에 처한 순종 동물들이 더욱 줄어들 수 있어 환경생태학적 균형문제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06년 북극지방 주변에서 한 곰이 사냥꾼들에게 사살됐다. 이 곰은 갈색털이 뒤섞인 흰색 곰이었는데 조사결과 놀랍게도 북극곰과 회색곰의 잡종이었다. 그 뒤로 이러한 잡종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북극의 기온이 조금씩 온난해지면서 회색곰들이 북극으로 ‘세력확장’을 하는 셈이다.
이러한 잡종은 현재 곰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더욱 희귀한 동물인 일각돌고래와 흰돌고래의 잡종도 최근 2∼3년 사이 점차 목격되고 있다.
2008년에는 잔점박이물범과 흰띠박이물범의 잡종들이 몇 마리 발견됐다. 2009년에는 북극고래와 참고래의 잡종도 발견됐다.
잡종이 점차 늘어날 경우 희귀한 북극동물들의 생존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진다. 특히 잡종들의 번식이 가능할 경우 동일한 지역에서 순종들과 먹이경쟁, 번식경쟁 등을 통해 순종의 생태계를 압박하게 되기 때문이다.
경희대학교 생물학과 동물생태학 전공 유정칠 교수는 20일 “원래 잡종은 생존터가 좁아지거나 암수의 비율이 깨지는 등 생존환경이 악화될 경우 매우 희귀하게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북극에서 이런 잡종들의 개체수가 늘고 있다면 이는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서로 다른 종은 적대감을 드러내거나 한쪽이 도망가기 때문에 교배가 이뤄지기 힘들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한쪽 세력이 고립되거나 다른 세력의 거주지가 확장될 경우 공간과 자원이 겹치면서 점차 늘어날 수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북극의 온난화다. 빙산이 녹고 기온이 오르면서 원래 서로 격리돼 있거나 다른 먹이를 먹던 유사한 종들이 점차 뒤섞이게 돼 잡종이 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국립해양포유류연구소 브랜든 켈리 박사 연구팀은 “북극에는 최대 34종의 잡종 동물집단이 존재한다”며 “이들은 순종의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한다”고 최근 밝혔다. 그 이유는 순종이 줄어들수록 근친교배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가 지속될 경우 다른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기존 북극동물들이 멸종하기 시작하면서 일어날 먹이사슬의 대혼란은 결국 인간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어서다.
유 교수는 “증가하는 잡종 때문에 순종이 멸종하더라도 잡종이 그 자리를 제대로 차지할 가능성은 적다. 잡종은 오랜 세월 동안 환경에 특화된 순종보다 생존력이 적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너도나도’ 다 멸종하는 대혼란을 막으려면 잡종마저 보호동물로 지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재 미국국립해양포유류연구소 등 환경단체 및 연구소들은 ‘미국 멸종위기생물보호법’을 개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는 순종이 멸종하는 것은 막기 힘들기 때문에 잡종이라도 개체수를 보호해 생태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다소 ‘서글픈’ 판단에서 출발했다.
/kueigo@fnnews.com김태호기자
■사진설명=북극곰과 회색곰 사이에 태어난 '잡종' 곰의 박제. 오른쪽에 보이는 회색곰과 색깔이나 머리 모양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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