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국은 정치, 사회적으로 격변을 겪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둔 한 해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주요국 중 가장 빠르게 경제가 회복됐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도 성공적으로 끝냈다. 하지만 해결 과제는 많다. 미래성장 동력 마련이 시급하고 위기만 오면 출렁이는 금융시스템도 추가 보완이 필요하다. 내수 육성도 중요하고 대(對) 중국 관련 국가전반의 전략도 마련돼야 한다. '선진화 몸살, 저성장기 진입… 맞춤형 전략으로 극복하자'는 주제로 5회에 걸쳐 2011년 신묘년 한국경제의 현안을 진단한다. <편집자주>
지난해 12월 19일 오후 2시30분 정부과천청사 제1브리핑실.
임종룡 기획재정부 제1차관, 이주열 한국은행 부총재, 권혁세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김용환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일요일임에도 자리를 가득 채운 보도진들에게 ‘거시건전성부담금(은행세) 도입방안’을 발표했다.
발표 당시 은행세 부과는 ‘자본자유화’라는 정책기조에 역행해 장기적으로 부작용이 클 수도 있다는 반대 여론에다 우리 군의 연평도 사격훈련 재개 여부로 ‘한반도 리스크’가 극대화되던 때여서 정부로서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거시건전성부담금은 은행들이 외채를 들여올 때 내는 추가적인 ‘비용(fee)’이다. 자본자유화에 역행하는 것으로 비치면 외국자본 유출 가능성도 있고 유입되던 외국자본이 급감할 여지도 있다.
하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은 외국환거래법 개정을 통해 내년 하반기부터 은행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을 공식화했다.
비우호적이었던 대내외여건에도 발표를 강행한 것은 1990년대 외환위기와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 때 과도한 자본 유출이 가져오는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임 차관은 이와 관련, “우리경제는 시스템 요인, 즉 과도한 자본유출입으로 생기는 부담이 가장 크다”고 단언했을 정도다.
■‘위기’만 오면 출렁이는 시스템
우리나라 경제의 최대 특징은 역동성이다. 수출, 수입이 각각 올 경상 국민소득 대비 45%, 40%로 무역의존도가 85%에 달할 정도다. 무역의존도는 3년 연속 80% 이상이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무역비중이 높아 글로벌 경기가 좋으면 경제는 여타 나라보다 빨리 좋아지고 ‘위기’조짐만 보이면 더욱 빨리 나빠지는 구조다
실물경제가 이처럼 역동적이면 금융은 진폭이 더 크다. 실물경제의 좋고 나쁨에 따라 투자처를 좇는 글로벌 자금도 여기에 맞춰 우리나라에 과도하게 들어왔다 나갔다 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유리몸’처럼 쉽게 깨질 수 있는 경제구조라는 의미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실물경제에 문제가 없어도 현 시스템으로는 외환위기에 따른 ‘낙인효과’로 위기에 쉽게 빠져들 수 있다.
실제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1997년 11월과 1998년 3월 사이에 글로벌 자본은 우리나라에서 214억달러가 급속히 빠져나갔다.
이 같은 현상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에도 마찬가지였다. 2008년 9월부터 그해 말까지 695억달러가 유출됐다. 위기의 진원지는 미국이었지만 자본은 우리나라에서 빠르게 유출됐던 것이다.
유출뿐만 아니라 유입 또한 과도하다. 경기회복이 빠른데다 경제 펀더멘털이 좋아 안정적인 투자처로 인식돼서다. ‘위기’ 때인 2008년 국내 증권에 투자한 외국자본은 294억달러 유출됐지만 2009년에는 404억달러가 유입됐고 올해 들어 9월말 현재 286억달러가 들어왔다. 과도한 자본 유출입은 자산가격, 원·달러 환율 등 외환시장에 직접적 영향을 미쳐 거시경제의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대외균형(경상수지, 환율)이 깨지면서 위기를 가중시킬 수 있다.
■자본유출입 규제는 완성됐지만…
정부가 지난달 19일 ‘거시건전성부담금 도입 방안’을 발표하면서 과도한 자본유출입과 관련된 정부 대책은 사실상 마무리됐다.
지난해 6월 발표된 과도한 선물환 거래와 외화대출에 대한 관리 강화, 12월 국회를 통과한 소득세법·법인세법 개정을 통한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방안에 이어 이번 조치가 3종세트의 마지막이었던 셈이다.
임 차관도 “대외 경제여건 변화에 대응할 정책수단을 갖췄다”며 “추가 규제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대책은 완성됐지만 외국자본의 과도한 유출입을 막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남아 있다.
자본유출입 축소가 오히려 환율변동성을 높일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우선 나온다.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 장기적인 달러화 가치하락의 기대, 높은 달러결제 비중 등이 만성적인 환헤지 수요와 그에 따른 단기외화차입의 형태로 나타날 여지는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경제의 구조자체를 변화시켜 나가야 궁극적으로는 가능하다는 의미다. 내수비중을 확대해 무역의존도를 줄여나가지 않으면 규제만으로 시스템적 위기 재연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은행권 외채에 대해서만 비용을 부과하기다는 추가적으로 자본거래에 대해서도 세금(토빈세)을 매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과거 경험상 거둬진 은행세 정도의 재원으로는 금융위기의 충격을 흡수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인 이정희 의원(민주노동당)도 “은행세는 오로지 외화 유입만 조절할 수 있을 뿐”이라며 “외화 문제는 오히려 유입단계보다는 유출단계에 더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외화 유출도 동시에 조절할 수 있는 외환거래세 등의 자본이득세를 동시에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0.05∼0.2%의 은행세를 매겨 기금을 조성하는 정부의 안으로는 (재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주요국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를 확대하는 등의 추가적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mirror@fnnews.com김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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