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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 리더에게 듣는다] (1) 파비오 스카치아빌라니 수석 이코노미스트

지난 13∼14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파이낸셜뉴스와 신한금융그룹 공동 주최로 열린 '제12회 서울국제금융포럼'은 '글로벌 금융시장 재편(Reshaping the Financial Markets)'을 주제로 국내외 석학들과 금융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마감됐다.

파이낸셜뉴스는 이번 포럼에 참석한 세계적인 경제 전문가들과의 대담을 통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새롭게 재편되는 국제 금융질서를 진단하고 이 같은 환경에서 한국 금융이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다 심층적으로 조망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 기획은 총 7회에 걸쳐 포럼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석학들의 진솔한 얘기와 뼈아픈 충고 등 한국 금융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 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 구도가 재편되고 있다.

금융위기 직후에는 주요 2개국(G2, 중국·미국)과 나머지 국가 사이의 '글로벌 임밸러스(세계경제 불균형)'이 논의됐지만 지금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국가와 미국, 서유럽 간의 '글로벌 리밸런싱(세계경제 불균형 해소)'이 화두다.

이와 관련, 파비오 스카치아빌라니 오만국부펀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취할 수 있는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내국인들이 불필요한 저축 대신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사회적 서비스를 확충하는 방법이 있다"면서 "또 하나는 위안화의 통화가치를 높이거나 노동자의 임금을 인상하는 방법으로 내국인의 소비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유럽 재정위기와 관련,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로 불리는 국가 중 절반이 무너졌고 그 다음 타자는 스페인이 될 것"이라며 "서유럽의 재정 문제는 2∼3개월 만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도 2년이 지났다. 서유럽의 재정위기 문제와 중동·남아프리카의 소요 사태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전문가 사이에선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설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어떻게 생각하나.

▲중국은 회복세가 뚜렷하다. 한국이나 베트남,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도 상당히 긍정적이다. 특히 인도는 위기를 겪지도 않은 상태다. 노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중국과 달리 인도는 (청년층이 많은) 인구구조가 성장을 떠받치고 있다. 게다가 글로벌 생산량은 오히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이제 내수진작을 통한 성장이 이뤄져야 한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은 부정적인 면이 강하다. 미국은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글로벌시장에서 '초기진출자'의 위치에서 우위를 점해왔고 이득을 봐 왔다. 서유럽은 '복지국가'의 명목으로 재정부채를 통해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해왔다. 그리스와 포르투갈은 재정부채로 무너졌다. PIGS 국가 중 절반이 무너졌고 그 다음 타자는 스페인이 될 것으로 본다. 2∼3개월 만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들 PIGS 국가는 유럽연합(EU)이라는 테두리 안에 한데 묶여 있어 구제할 방도가 없는 것 같은데 대안이 있나.

▲서유럽 국가들이 외환정책에서 한데 묶여 있는 것은 맞다. 통화가치를 바꿀 수 없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통화가치를 낮추는 것도 (그리스 같은 국가에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영국의 파운드화와 달리 그리스의 드라크화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태국의 바트화와 같은 수준의 통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스는 현재 유럽중앙은행이 공급하는 엄청난 유동성 때문에 살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에선 서유럽의 상황을 '정상적 경기하강세'라고 보지만 나는 이를 위기라고 생각한다. 이는 1960년대 이후 서유럽 국가들이 지속해 온 '복지시스템과 국가 역할'의 은퇴라고 본다. 이제 국가의 기능 자체가 변할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 신흥시장의 성장세가 미국과 서유럽에 비해 훨씬 낫다. 실제 주식시장에서만 봐도 신흥시장의 실적은 놀라울 정도다. 이 같은 실적 행진이 계속될 것으로 생각하나.

▲글로벌 상품시장과 주식시장의 다양한 글로벌 펀드들이 아시아 신흥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 금융위기 당시 신흥시장은 선진국과 달리 경제 자체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중요한 문제들, 예를 들어 서브프라임 사태 등이 없었다. 금융시장 측면에서 싱가포르와 태국과 한국 등에 국제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시설이 확충된다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금융시장이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더욱이 일본 대지진 직후 신흥시장에 대한 글로벌 자산관리사들의 시각이 달라졌다. 일본 대지진 후 유럽이나 북미로 자금이 몰릴 것으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오히려 신흥시장에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심지어 이번 일본 대지진이 일본에 기회가 될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또 일본 원전사태로 글로벌 에너지전략이 달라졌다. 핵연료 르네상스가 끝났다. 대안에너지시장이 떠오를 것이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세계경제의 불균형(글로벌 임밸런스)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이제 글로벌 리밸런싱(세계경제의 불균형 해소)이 논의되고 있다. 중국이 리밸런싱 차원에서 내수진작 카드를 빼들었다. 그동안 중국의 성장을 이끌던 미국과 서유럽의 소비가 줄어들면서 앞으로 수출만으로는 지금까지의 성장세를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다. 이제 통화시장과 실물시장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 얼마 전 중국의 한 친구가 심장마비에 걸린 일이 있었다. 병원에선 지금 당장 수술이 필요하지만 현금이 없으면 집도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친구 가족들이 친지와 이웃으로부터 수술비를 빌린 후에야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중국인들은 현금 없이는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으니 필요 이상으로 돈을 저축한다. 저축과 수출은 연관성이 있다. 중국은 수출을 통해 저축을 하고, 이 현금은 다시 서유럽 등 외부에 흘러들어간다. 서유럽은 빌린 돈으로 다시 중국으로부터 수입을 해서 재정적자가 늘어나고, 중국은 그 반대의 흑자 규모가 늘어나는 사이클을 겪게 된다. 이 같은 글로벌 불균형을 타개하기 위해 중국이 취할 수 있는 방안은 두 가지가 있다. 내국인들이 불필요한 저축 대신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사회적 서비스를 확충하는 방법이 하나 있으며, 위안화의 통화가치를 높이거나 노동자의 임금을 인상하는 등의 방법으로 내국인의 소비력을 강화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수출시장을 말레이시아와 인도, 아프리카 등의 경쟁국에 빼앗길 것이다. 하지만 수출이 줄어도 중국 내 소비수요가 늘어나면 상관없다. 사실 제조업의 비용이나 수익성 측면에서도 해외에 수출하는 것보다는 국내에 수출하는 게 더 낫다.

―최근 한국은 이슬람채권법(수쿠크법)을 놓고 논란이 많다. 정부는 이슬람자금을 유입시키기 위해 이슬람채권에 각종 면세 혜택을 주는 법안을 도입하려 준비 중이다. 문제는 특정 종교(이슬람교)에 혜택을 부여한다는 이유로 개신교가 강력하게 반대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슬람채권의 수익이 중동 테러리스트 자금으로 쓰인다는 극단적인 해석을 내놓는 사람들도 있다.

▲수쿠크법을 이해하려면 이슬람금융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이슬람교의 율법에서는 실제 물건을 거래하지 않고 이자만 받는 행위는 금지된다. 일하지 않고 이득을 챙기는 것을 막는 맥락이다. 이슬람 율법에서 자금투자는 반드시 직접적인 활동에 연계돼야 한다. 결국 이슬람자금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투자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나 공항을 만들 때 자본을 투자한 후 이를 사용하는 데 따른 요금을 금리 대신 받는 것이다. 일반적인 이해로는 '이자'지만 이슬람채권에는 '수익'이 된다. 물론 실질적 측면에서 이자를 받지만 투자를 통해 수익금을 받는 것이나 맥락은 같다. 하지만 이름은 채권이지만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게 핵심이다. 이슬람채권이 가장 선진화된 시장으로는 영국이 꼽힌다. 사실 유럽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슬람채권보다는 이슬람은행이다. 이슬람은행은 투자신탁사와 같다. 이슬람자금이 유럽에 흘러들어가면서 유동성 측면에서 중앙은행에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슬람은행은 (율법 상) 자금을 빌려준 회사가 수익을 내지 않으면 이자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사회기반시설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정리=mjkim@fnnews.com김명지기자·사진=박범준기자

■파비오 스카치아빌라니 오만국부펀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경제 동향에 대한 분석과 전망, 중동과 북아프리카 산업정책 분석 전문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글로벌 거시경제전문가로 활동한 지 20년이 되는 스카치아빌라니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008년부터 올해까지 두바이국제금융센터 거시경제 및 통계분야 책임자를 지냈다.

2006∼2008년 1년8개월 동안 걸프지역 산업 컨설팅 업체인 GOIC의 경제연구분야 수장직을 맡았으며 2001∼2003년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 전무이사로 재임했다.


또 1998∼2001년 유럽중앙은행(ECB) 연구분야에서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어드바이저로 활동했으며 1992∼1998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이코노미스트 업무를 담당했다.

지금까지 그가 쓴 논문들은 중동지역은 물론 유수의 매체에서 다수 회자됐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로마 리베라대 사회과학부를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