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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금융 1년 그리스 위기 여전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1년이 됐지만 재정위기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국가의 신용등급은 투자부적격인 ‘정크’ 수준으로 추락했고 자금조달 비용은 두 배 가까이 뛰었다.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약속했던 재정적자 감축으로 인해 지난 1년간 16만명의 그리스인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리스가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국채에 대한 채무조정을 할 것이라는 우려는 이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구제금융 1주년 고통은 지속

23일(현지시간) AP 및 AFP,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그리스는 이날 구제금융 신청 1주년을 맞았지만 이를 축하하는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고통의 사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바로 1년 전 그리스는 몇 개월 동안 시장에서 제기됐던 구제금융을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에 신청했다. 그리스 총리인 게오르게 파판드레우는 이날 TV 연설을 통해 구제금융 신청을 공식화하며 “국제적 결속을 통해 우리의 공동이익과 공동 통화를 보호할 것이라는 강력한 신호를 시장에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부터 12개월이 지났지만 그리스 총리의 강력한 신호로 받아들였다는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리스의 국가 신용등급은 오히려 정크 수준으로 떨어졌고 자금조달비용은 구제금융 신청전에 비해 두배 가까이 치솟았다. 지난 21일 유로존 국채시장에서 그리스 10년만기 국채 수익률은 전날보다 20bp(1bp=0.01%포인트) 올라 유로존 최고기록인 14.95%까지 치솟았다. 같은 만기 독일 국채 수익률(3.27%)보다 4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국민들도 고통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년간 16만명이 넘는 그리스 국민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정부가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대가로 실시한 대규모 재정적자 감축으로 인해 실업과 기업의 파산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규모 재정긴축에도 올해 그리스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50%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스 경제분석 전문가인 방겔리스 아가피토스는 “현재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빠른 대응과 엄격한 조치가 요구된다”면서 “물론 시장은 (그리스 정부가) 이런 조치를 취하는 데 정치적 피로감과 비겁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빚 떨어내기 나서나

위기는 지속되고 있다. 정부의 잇단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리스가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투자자들에게 채무조정을 요청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미 그리스의 채무조정을 기정사실화하고 그 시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스 일간 ‘타 니아’는 지난 22일 “정부가 채권만기를 늦추고 금융기관들과 상환조건 수정에 대한 자발적 합의를 이루는 식의 구조조정안을 고려 중”이라고 보도했다. 또 다른 일간지인 ‘이소티미아’는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 “그리스가 금융기관들과의 합의를 통해 평균 5년 정도의 채무만기 연장 방안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면서 “아직 비공식 논의단계로 최종 결정에 이른 것은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시장뿐 아니라 그리스 국민들도 부채 조정을 우려하고 있다. 알코리서치사가 그리스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15∼19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47%는 그리스의 채무조정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채무조정이 필요 없다고 답한 이들은 24%에 불과했다.

EU는 그리스 재정위기에 대한 추가조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EU 대표단은 구제금융 지원금 1100억유로 가운데 5차분을 지급하기 위해 다음달 그리스의 채무상황을 점검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채무감축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될 경우 부채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부채조정이 이뤄져도 문제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요르겐 스타크는 유로존 국가들이 부채조정을 할 경우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뛰어넘는 최악의 은행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타크는 최근 독일 ZDF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 국가가 부채감축을 위해 지원을 받을 때 고통이 없는 방법은 없다”며 “부채조정이 이뤄질 경우 해당 국가는 금융시장으로부터 단기간 차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sjmary@fnnews.com서혜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