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발 내밀기, 차명계좌 갈아타기, ‘쪼개기 분신술’까지...
검찰 수사 기법이 첨단화되면서 차명계좌를 이용한 기업들의 ‘감추기 수법’도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검찰이 자금출처가 불명확한 차명계좌를 밝혀낼 경우 겉보기에는 비리 혐의의 ‘8부 능선’을 밝혀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산 넘어 산’이다. 차명계좌 보유 사실 자체로는 처벌이 어려운데다 자금 입출금과 범죄 혐의와의 연관성을 밝혀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차명계좌에 대한 검찰의 수사기법 첨단화와 함께 기업들이 해외 조세피난처 등을 이용해 역외탈루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검찰, 차명계좌와 숨바꼭질
특히 수천만원대 이하 소액 차명계좌의 경우 차명계좌 자체를 입증하는 게 어렵다. 명목상의 계좌주가 실질 소유권을 주장하는 경우 그것을 밝히는 것은 검찰의 몫이다. 차명계좌 명의상 주인이 억대 연봉을 받는 임직원일 경우 계좌에 있는 수천만원대 돈을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면 수사가 지연되기 십상이다.
검찰에 따르면 태광그룹 차명계좌의 경우 차명계좌에 있던 금액이 이 차명계좌에서 저 차명계좌로 옮겨가는 등 이른바 ‘갈아타기’ 형태를 보였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연결자금 계좌추적을 위해 각 단계마다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새로 받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호소한다.
소요금액을 과다계상해 입금할 때도 형태를 알아볼 수 없도록 쪼개놔 파악하기가 어려워졌다. 과거 검찰이 수사했던 경기 용인지역에 본사를 둔 S사의 경우 수억원대 공사비를 과다계상한 후 이를 여러 차례 나눠 ‘1억5734만3200원’, ‘7224만520원’ 등으로 쪼개 실제 공사비로 위장했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검사는 “며칠 동안 입금전표를 분석한 결과 수차례 비슷한 기간에 입금됐다 출금된 금액들을 합쳐보니 5억원, 10억원 등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형태를 찾아낼 수 있었다”면서 “차명계좌를 이용할 경우 이미 수사받는 상황을 가정해 자금 관리방법도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진술에 의존하기 보다는 결산 재무제표, 감사보고서, 공시자료 분석을 통해 비정상적 자금·자산 이동 등을 파악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최근 검찰은 이같은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재무분석사 출신 검사, 공인회계사 출신 검사를 수사에 투입하는 한편 공인회계사 출신 회계분석 전문 수사관, 금융조사부 출신 수사관 등을 투입해 직접 자료를 분석, 재무담당자·공인회계사 조사를 담당케 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차명계좌 하나 하나를 찾아내는 과정은 캄캄한 방에 숨겨져 있는 작은 바늘을 찾는 것과도 같다”면서 “차명으로 의심되는 계좌를 발견하더라도 그 안에 있는 돈이 실제 누구 것인지 밝히기 위해서는 끈기 있는 조사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역외탈세 통한 비자금 조성도
최근 들어서는 기업들이 비자금 조성에 대한 국내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지능화된 편법을 동원한 역외탈세 적발사례도 늘고 있다.
해외투자를 가장해 해외 조세피난처에 있는 현지법인에 송금한 뒤 이를 대주주 등이 유출해 해외부동산을 취득하거나 자녀 유학비 등으로 유용하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과거 검은 돈의 주요 피난처로 지적받았던 스위스 등 해외 금융계좌에 은닉하는 수법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국세청은 지난해 조세피난처 등에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기업자금을 불법 유출한 혐의가 있는 기업 및 사주에 대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벌여 탈루소득 6224억원을 적발하고 총 3392억 원을 추징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41건, 총 4741억원을 추징했다. 국세청이 올해 1조원의 역외탈루 세금 확보를 목표로 한 점에 비춰 3개월만에 1년 목표의 절반 가까이를 달성한 셈이다.
조세피난처는 기업이나 개인의 소득에 대한 세금이 거의 없고 회사 설립 또는 외국환 업무에 대한 규제도 없어 다국적 기업들의 돈세탁 창구 및 비자금 은신처로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닷컴은 최근 총수가 있는 국내 자산순위 30대 재벌그룹이 보유한 해외 계열사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4월 기준 조세피난처로 분류된 국가나 지역에 소재한 계열사는 231개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이는 30대 그룹의 전체 해외 계열사 1831개의 12.7%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룹당 평균 7∼8개 해외 계열사가 조세피난처에 있는 셈이다.
특히 대기업 계열사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정한 조세피난처 35개국 가운데 한국 정부가 조세정보 교환협정을 체결한 6개 나라 외의 지역에 집중돼 있었다. OECD는 2002년 케이만, 버뮤다, 마샬군도 등 35개 지역을 조세피난처로 지정한 바 있다.
/ksh@fnnews.com 김성환 조상희 최순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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