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부자들 명단이 확 달라졌다. 전통적인 재벌의 2,3세 후손들이 차지하던 상위권에 창업 1세대들이 대거 등장했다. 재벌닷컴이 1813개 상장사와 1만4289개 비상장사의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주식ㆍ배당금ㆍ부동산 등의 가치를 평가한 결과다. 평가액 변화로 순위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지만 고착화돼 가는 듯했던 ‘부자 지도’에 일어난 의미있는 변화다.
1조원 클럽 회원은 모두 25명. 작년의 19명과 비교하면 6명이나 늘었다. 부자 1위는 누가 뭐래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다. 재산평가액 8조5265억원이다. 2위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3위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으로 작년과 마찬가지다. 재벌 2,3세가 대거 포진한 것도 예견됐던 일이다. 삼성가(家) 출신 8명과 범 현대가 3명, 범 LG가 3명 등 19명이나 된다.
눈에 띄는 것은 물려받은 돈 한푼 없이 스스로 재산을 일궈낸 자수성가형 부자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김정주 엔엑스씨(옛 넥슨) 회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민주 에이티넘파트너스 회장, 김준일 락앤락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등 6명이다. 박현주(6위), 김정주(8위) 두 사람은 올해 처음으로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신흥 재벌 6명에겐 공통점이 있다. 우리 생활과 밀접한 비즈니스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금융가의 황제’ 박현주 회장이 이끄는 미래에셋그룹은 증권ㆍ보험 등 금융 전반을 다루며 국민들의 금융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김정주 회장은 청소년은 물론 성인들까지 빠져드는 온라인게임의 맹주다. 김택진 회장은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벤처 성공의 대명사다. 이민주 회장은 케이블방송의 숨은 실력자다. 김준일 회장은 플라스틱 주방용품 돌풍으로 주부들에게 인기다. 서정진 회장은 직장인에서 미래산업인 바이오업계 선두주자로 변신에 성공한 인물이다.
1조원 클럽에는 못들었지만 역동적인 비즈니스로 돋보이는 후보군들도 탄탄하다. 세계1위 골프용품 브랜드를 인수한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48위), 학습지에서 정수기ㆍ비데 등 환경가전으로 영역을 넓힌 장평순 교원그룹 회장(32위), K-팝 돌풍의 주역 이수만 에스엠엔터테인먼크 회장(146위) 등이 눈에 띈다.
이들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살아있는 기업가정신이다. 남들이 미처 생각 못했던 새로운 비즈니스를 발굴해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승승장구했다는 건 위기를 기회로 잘 활용한 결과일 것이다. 이들의 존재는 한국의 비즈니스생태계도 역동성을 잃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그런 의미라면 부자 순위와 재벌 판도에 천지개벽이 있다 해도 괜찮을 것 같다.
/ryu@fnnews.com 유규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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