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성폭행 사건에서 장애인에 대한 ‘항거불능’ 상태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최근 영화 ‘도가니’의 배경이 된 광주 인화학교 청각장애아 성폭행 사건에서 항거불능 상태를 인정하지 않아 무죄판결이 내려졌던 것과 대비되는 판결이어서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재판장 배준현 부장판사)는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3급 지적장애인 K양(15)을 성폭행한 혐의(성폭력범죄의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장애인에 대한 준강간)로 기소된 정모씨(27)와 박모씨(23)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고 26일 밝혔다.
재판부는 “사건 당시 K양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지능지수로 성에 대한 기초적 인식이 없고 상황에 대한 판단력이 현저히 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며 “박씨 등이 K양이 성관계를 거부하거나 저항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곤란한 상태라는 것을 이용해 성관계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K양이 정신적 충격과 성적 수치심을 겪고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라는 데 악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지난 3월 서울 금천구의 한 빌딩 화장실에서 평소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된 K양을 불러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으며, 정씨는 같은 날 오후 K양을 안양시 만안구의 한 모텔로 데리고 가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동안 박씨 등은 K양의 지적장애 사실을 몰랐고 K양이 성관계를 거부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한편 국회 법제사법위 법안심사소위는 지난 24일 장애인과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행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내용을 담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인 일명 ‘도가니법’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는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일 경우에만 성폭행으로 인정하는 조항이 삭제됐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