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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富의 양극화’ 심화] 식당하며 고급승용차 몰고..월세방서 ‘쪽잠’ 자고..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모국을 찾은 조선족 사회에도 최근 '부의 양극화' 현상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저임금 인력으로 한국에 들어와 열악한 생활환경에서 특유의 근면성실함으로 악착같이 일해 기반을 잡은 조선족들이 늘면서 한국사회에서 신(新)중산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월세 20만∼30만원의 쪽방거주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데다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문화적 차이와 편견 속에서 소외계층으로 떨어진 조선족 근로자도 부지기수다.

■'코리안 드림'으로 신중산층 형성

조선족이 밀집해 있는 서울지하철 2·7호선 대림역과 7호선 남구로역 주변에서 직접 식당을 운영해 부자가 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 9일 현지 중개업소 한 관계자는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 중 장사가 잘되는 곳은 권리금을 5000만원이나 받고 넘기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 지역은 조선족이 조선족이나 중국인을 상대로 하는 가게가 많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휴대폰 매장밖에 없다"고 전했다.

상당수 가족 단위로 한국에 들어와 맞벌이를 하는 경우가 많아 가구당 월수입이 300만∼500만원에 달하는 가구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대림동 일대에서 자영업을 기반으로 해 성공한 일부 조선족 중에는 고급 외제승용차를 끌고 다니는 부자들도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조선족 유학생들도 늘어나기 시작해 엘리트 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대림역과 남구로 등 이 지역에 연고를 둔 조선족 유학생은 현재 5000명 정도다. 이들은 한마음협회(조선족 청년모임), 재한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를 통해 모임을 형성하고 있다.

조선족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직업 선호도도 바뀌고 있다. 한때 서울 강남 일대에서 베이비시터의 주요 공급원이었던 조선족 여성들은 최근 높은 임금을 요구하거나 아니면 일을 기피하는 분위기다.

중국에서 교사로 활동하는 등 주로 고학력 출신인 조선족 여성들은 최근 한국에서 베이비시터로 입주할 때 입주 여부를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강남에 거주하는 한 주부는 "조선족 베이비시터를 구하려고 면접을 했는데 집이 좁고 낡은 데다 운전기사도 없느냐는 등 생활환경을 까다롭게 따져서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베이비시터의 급여는 월 120만∼150만원 선이다.

베이비시터를 하던 조선족 중에는 식당일로 전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베이비시터는 하루종일 집안일을 돌봐야 하는 데다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없고 급여가 식당에 비해 낮은 편이다. 식당업무는 육체적으로 힘들어도 웬만한 식당에서 월 180만원 정도 받을 수 있고 입주가 아니기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생활·근무여건 열악 '양극화' 심화

하지만 상당수 조선족은 여전히 문화적 차이와 편견, 저임금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 대림2동 중앙시장 일대에 조선족이 많이 몰려 있다. 대림동 일대에는 단칸방이 많은데 대부분 공동화장실을 쓰는 낡은 주택이다. 임대료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 선이다. 화장실이 밖에 있고 공동으로 쓴다면 20만원까지 내려간다. 최근 이 일대의 낡은 주택에서 거주하려는 전·월세 수요가 별로 없는데 조선족들이 공백을 메우고 있어 집주인에게는 반가운 존재다.

한국인과 조선족 간 갈등의 골도 여전히 깊다. 대림역 대로에서 횡단보도 하나를 두고 길 건너편의 생활상은 완전히 다르다. 아파트촌이 밀집한 곳은 주로 한국인이 거주하지만 대림동 중앙시장 쪽은 조선족이 장악하고 있다.

대림동에 20년간 거주했다는 한 주민은 "밤이면 무법천지가 되고 치안이 안 좋아 성인남자들도 이쪽은 잘 다니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조선족이 살면서 분리수거 개념이 없어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려 곳곳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했지만 지켜지지 않아 주민들의 불만이 크다"고 말했다.

조선족 타운에 대한 재개발 추진도 큰 변수다. 서울시는 대림역세권을 '역세권 시프트'로 개발하는 계획을 마련해 놓고 있다. 현재 이 사업은 지지부진한 상태지만 본격적으로 개발이 시작되면 이 일대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조선족이 밀집해 있는 가리봉동재정비촉진사업도 현재 사업계획 초기 단계지만 조선족에 대한 이주대책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대림과 남구로 일대의 집값도 올라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으로 방을 옮기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조선족도 늘고 있다.


남구로역 일대의 새벽 건설인력시장에서도 조선족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남구로역 인근 인력소개소 관계자는 "한국 인력보다 조선족 인력의 인건비는 소폭 낮게 책정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조선족 인력의 인건비가 낮게 책정돼 전반적인 급여 상승폭이 제자리걸음이라는 한국인들의 푸념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특별취재팀 조창원팀장 김성환 강두순 유현희 강재웅 이병철 이유범 박지영기자

■사진설명=1970∼1990년대 구로공단(현재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지하철7호선 남구로역과 2·7호선 대림역 주변에 2000년대들어 조선족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조선족타운으로 탈바꿈했다. 조선족이 운영하는 중국식 식당이 빼곡히 들어선 영등포구 대림2동 중앙시장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