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집에 침입해 속옷만 입고 잠자는 모습을 지켜보고 신체일부를 만진 남성에 성범죄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30일 여성 혼자 사는 집에 침입해 집주인을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기소된 김모(36)씨에 대해 주거침입 및 상해죄만 인정하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씨는 지난해 9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창문을 통해 이모(29)씨의 집에 침입했다. 이씨는 당시 속옷 하의만 입고 이불을 덮지 않은 채 잠들어 있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손으로 피해자의 입을 막은 후 피해자의 가슴과 허리 부분을 만진 것은 강간 또는 강제추행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발각된 이후 피해자를 제압하려는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1·2심은 이씨가 잠에서 깰 때까지 아무런 짓도 하지 않은 점 등을 감안, "잠든 모습을 보려던 것"이라는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주거침입 및 상해죄만 적용했다.
이같은 판결은 입증이 쉽지 않은 성범죄의 특성에서 나온다. 대부분의 성범죄가 목격자가 없는 상태에서 발생하고 또 당시 성적인 의도가 있었는지를 입증하는게 쉽지 않기 때문에 무죄 추정원칙에 의해 단순 상해죄 등의 판결이 나오는 것이다.
훔쳐보기를 성범죄로 인정하지 않는 현행법 체계도 문제다.
현행법에서는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해 인터넷에 유포할 경우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 특례법을 적용해 5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되지만 보기만 할 경우엔 성범죄로 보지 않는다.
지난 9월에도 한 현직 초등학교 교사 A씨(29)가 수원시 팔달구의 한 아파트 상가 3층 여자화장실에 숨어 용변을 보던 여성들을 훔쳐보고 소리를 듣는 등 변태적인 행동을 하다 적발됐으나 성범죄가 아닌 '주거침입죄'의 적용을 받았다.
판사시절 여러 성범죄 사건을 맡았던 오지원 변호사는 “예전에 한 남성이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여자 아이에게 성기를 노출해 수치심을 준 사건이 있었으나 무죄처리된 바 있다”며 “화장실 훔쳐보기 등 여성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것이 명백한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법의 입법이나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umw@fnnews.com | 엄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