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시절 우연히 어깨너머로 맬더스의 인구론을 듣던 날 인류의 앞날이 걱정돼 밤잠을 설쳤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머지않은 장래에 인류는 재앙을 맞을 것이다.'
그 시절엔 집집마다 5형제, 6형제는 보통이었고 곳곳에서 인구폭발이 목도되던 시대였다. 그날 저녁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다섯 동생들과 저녁밥을 먹는 중에 갑자기 '인구론'이 떠올랐다. 기하급수적으로 계산해보니 내 6형제의 자식들은 36명이 될 것이고 또 그들의 자식들은 216명이 될 것이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 중얼거렸다. "아, 인류를 어떡하지?" 창졸간에 박애주의자가 된 내 옆에는 다섯 동생이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걱정이 유별났던 이유는 자신이 유달리 음식에 민감한 체질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입이 짧았고 음식투정이 심했다. 이 음식 저 음식 종류와 맛에 까탈부리는 장손이었다. 지금도 남들 앞에 큰소리 칠 수 있는 두 품목이 있는데 추어탕과 보신탕은 소믈리에쯤 된다.
여름철이면 할머니는 입 짧은 손자를 위해 황구 한 마리를 고방에 잡아놓고 삼시세끼 개장국을 끓였다. 손으로 쭉쭉 찢은 살코기들은 고사리, 토란줄기와 섞여 고기인지 채소인지 구분이 안 되는 절묘한 요리로 탄생했다. 가을이면 벼 베기를 마친 논에서 할머니가 직접 잡은 미꾸라지가 얼갈이배추, 무청, 숙주나물과 만나 추어탕으로 태어났다. 그 조기학습 덕분에 나는 요즘도 보신탕과 추어탕의 심사위원 역을 종종 맡는다.
추어탕과 보신탕엔 반찬이 거의 필요 없다. 오히려 반찬이 많으면 진짜 맛을 즐기는데 방해받는다. 훌륭한 요리란 보좌하는 반찬 없이 그 홀로 우리의 구미를 충족시키는 음식이다. 마치 진정한 스타는 조연배우의 도움 없이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요리의 자랑은 한 가지 재료로 명료한 한 끼 식사를 만들어내는 점일 텐데 삼계탕, 보신탕, 추어탕이 그렇다고 생각한다.(노파심에서 말하자면 추어탕에 넣는 양념을 많은 이가 산초가루로 잘못 알고 있는데 사실은 제피가루다. 산초는 열매의 기름을 짜 먹는 약용식물이고 제피 혹은 초피나무는 열매를 가루로 내어 향신료로 쓰는 식용식물이다.)
내가 가장 불만인 한국요리는 '한정식'이라 불리는 요리상이다. 한정식은 반찬 수에 따라 5첩, 7첩, 9첩 반상이라 칭하는데 왕의 수라상은 12첩 반상을 원칙으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한정식 집에 가보면 대개가 12첩을 넘어 14첩, 16첩 심지어는 45첩까지 있다고 한다. 종류도 지나치고 양도 과하다. 한 끼 식사로 비빔밥 한 그릇이면 족한데 비빔밥 열 그릇 양을 내놓으며 먹으라는 품새다. 그래서 한 음식평론가는 한정식이란 '다 먹을 수 없게 차린 음식상'이라고 비아냥대는 정의를 내렸다.
한정식을 다 먹을 수 없게 차리는 까닭은 대접용이 아니라 접대용 상차림이라서 그렇다. 또 들어가는 비용도 대개는 개인 돈이 아니라 공금일 경우가 많다. 이런 사정을 익히 알고 있는 한정식집 주인들은 속칭 이 눈먼 돈을 잡기 위해 계속 반찬의 첩을 늘린 것이다. 한정식은 어떤 이는 조선시대 때부터 시작된 상차림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일제강점기 때 기생 있는 요릿집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한다. 허영과 허식을 깔고 앉아 기생 끼고 술 마시는 남자들의 주머니를 털기 위해선 화려한 산해진미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저께도 어쩔 수 없이 한정식 집에서 식사를 했다. 별의별 반찬들이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져 맛을 보지 못한 반찬 수가 12가지가 넘을 정도였다. 내 모습을 상상하니 곤룡포 입고, 익선관 쓰고, 옥대하고, 어혜 신고 수라상받은 임금꼴이었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여종업원이 인삼뿌리에 꿀까지 발라 대령했지만 배가 터질 것 같아 먹을 수가 없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한정식 상차림을 보니 갑자기 맬더스 영감님이 생각났다. 추어탕, 삼계탕, 보신탕 같은 단품 요리야말로 가장 지역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밥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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