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피임약과 사전피임약의 분류가 뒤바뀌면서 큰 혼란이 일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이르면 오는 7월부터 사후피임약을 약국에서 살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7일 밝혔다. 반대로 지난 40여년 약국에서 살 수 있었던 사전 피임약은 부작용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했다. 처방전 없이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의약단체는 반발했고 소비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사전·사후피임약 부작용 논란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킨 것은 사전 피임약인 에티닐에스트라디올 복합제의 부작용 문제다.
식약청에 따르면 사전 피임약은 흡연 여성의 경우 심장혈관계 부작용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 또 유방암이나 자궁 내막암 환자와 혈전색전증, 간염환자 등은 투여하지 않아야 한다. 또 40세 이상 여성과 비만, 편두통, 우울증 환자 등은 신중하게 복용해야 한다.
현재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캐나다 등 8개국에선 사전 피임약을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난 60년대 도입될 당시 산아제한 정책으로 인해 일반약으로 분류했다. 그 정책은 지금까지 유지돼 왔다.
현재 국내에는 멜리안정, 미뉴렐정, 마이보라, 머시론정, 에이리스정, 아스메이트20, 트리퀼라, 쎄스콘정, 미니보라30 등 사전 피임약 11품목이 판매되고 있다. 이 중 최근 허가를 받은 야즈정과 야스민정은 처음부터 전문약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이전에 허가된 9개 품목은 일반약으로 약국에서 손쉽게 살 수 있었다.
소비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사전 피임약을 3년간 복용했다는 이분희씨(42·가명)는 "10년 넘게 흡연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피임제 복용이 위험이 하다는 것을 약국이나 병원에서도 들은 적이 없다"며 "체중 증가와 상관없이 몸이 많이 붓고 두통이 잦아지거나 신경이 예민해지는 증상을 계속 겪어왔다. 이것이 부작용이란 것도 알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식약청 관계자는 "사전 피임약은 60년에 도입됐고 의약품 재분류는 85년에 도입됐기 때문에 그 이후 분류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며 "사전 피임약은 한 달에 21일을 복용해야 하고 매일 한 알씩 장기 복용하기 때문에 부작용 우려가 커진다"고 설명했다.
약국 판매가 가능해진 사후 피임약은 오남용 우려를 낳고 있다.
식약청은 사후 피임약이 1회 복용하는 의약품이기 때문에 구역, 구토 등의 부작용이 48시간 이내 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사전 피임약보다 용량이 높은 사후 피임약을 무분별하게 반복해서 사용할 경우, 부작용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식약청 관계자는 "현재 오남용 우려를 막기 위해 연령 제한이나 남성 구입 금지 등 여러가지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앞으로 공청회, 공론화 과정을 통해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오·남용 우려 증폭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에 대한 의료계 반발은 거세다.
대한산부인과학회와 대한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피임약 복용의 불모지인 우리니라에서 시기상조인 정책"이라며 "오남용과 부작용 가능성이 커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산부인과학회는 "사후피임약을 반복해 사용할 경우 부작용이 심각하며 정상 용량 범위 안에서 사용하더라도 출혈(31%), 오심, 복통 등의 발현 빈도가 높다"며 "청소년들의 성 노출이 늘어난 상황에서 사후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은 올바른 성의식과 피임 문화 정착을 방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회에 따르면 사후피임약을 일반약으로 전환한 미국, 영국 사례 등의 경우, 원치 않은 임신과 낙태는 감소하지 않고 청소년의 임신과 성병 유병율이 높아졌다.
대한약사회는 의료비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했다.
약사회는 "사전 경구피임제가 전문의약품으로 전환되면 의료비 부담이 현행 대비 4.4~5.3배 증가돼 국민 부담이 가중된다"며 "현재 시판되고 있는 사전 경구피임제는 1일 용량이 20∼30㎍ 수준인 낮은 도즈 제제로 안전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제약업계는 사후 피임약의 오남용을 우려했다. 제약사 관계자는 "아직 최종 확정이 된 것이 아니지만 일반약으로 전환되면 제약사 입장에서는 오남용과 부작용 면에서 부담감이 있다"며 "일반약으로 전환이 확정되면 사용이 늘어날 것을 고려해 오남용 방지를 위한 공익광고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seilee@fnnews.com 이세경 홍석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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