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환자들이 만성 골수성 백혈병(CML) 치료제인 '글리벡(성분명 이매티닙)'대신 2세대 표적항암제(백혈병 치료제)를 쓸 수 있게 해달라며 집단 청원을 냈다.
16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서울성모병원 혈액종양내과 김동욱 교수 등 7개 의료기관의 혈액암 의료진과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 400여 명은 '스프라이셀'(성분명 다사티닙), '타시그나'(성분명 닐로티닙), '슈펙트'(성분명 라도티닙)의 건강보험 적용 기준을 완화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지난 7월 말 보건복지부에 제출했다.
이들 세 약물은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글리벡의 뒤를 이을 제품으로 개발된 것으로, 제약사가 비용을 댄 임상시험에서 글리벡보다 효과가 강력하고 부작용은 덜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시 당시 이 제품들은 글리벡으로 치료를 받았다가 내성이 생겼거나 효과를 보지 못한 환자에게 사용됐으나 약효가 입증된 약 2년 전부터는 진단 후 처음부터 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2세대 약물을 사용하다가 내성이 생겼을 때 다른 약물로 바꾸려고 하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적게는 180만원, 많게는 300만원이 넘는 약값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이번 청원을 낸 김동욱 교수는 "2세대 약을 사용하다 내성이 생겨서 약을 바꾸면 엄청난 약값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조기에 2세대 약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2세대 약은 글리벡보다 효과가 더 강력하면서도 약값은 저렴하지만, 현행 건강보험 적용 기준 때문에 환자들이 효과가 덜하고 값이 더 비싼 약을 쓰도록 내몰린다는 게 청원인들의 주장이다.
심평원은 이에 대해 약물 변경의 효과가 현 단계에서는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약물 변경 등 항암 치료의 순서와 방법은 임상시험으로 효과를 검증해야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다. 항암제는 독성이 강하고 약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혈병 2차 치료제의 경우 약물을 바꿨을 때의 효과에 대해 아직 국내외 규제 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했다.
심평원 관계자는 "건강보험 적용에 앞서 충분한 효과 검증을 요구하는 것은 항암제 등 다른 치료제에 대해서도 일관된 원칙"이라고 말했다.
또 백혈병 치료제들이 서로 비슷한 약이어서 이론적으로 '교차내성' 발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심평원은 덧붙였다.
심평원 관계자는 "제약사들이 조기에 허가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백혈병 환자들의 불안감을 고려해 조만간 결론을 내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hsk@fnnews.com 홍석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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