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의 해외도피 가능성 여부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고 단순히 고액의 국세를 체납했다는 사실만으로 출국금지 처분을 내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함상훈 부장판사)는 고액의 국세를 체납한 신모씨가 "출국금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승소로 판결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조세는 소득이나 매출을 전제로 부과되는 것이므로 이후 자력을 상실했다는 사정은 체납의 정당한 사유로 볼 수 없다"며 "신씨는 5000만원 이상의 국세를 체납한 자로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출국금지 대상자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출국금지는 재산의 해외도피를 방지하는 데 주목적이 있다"며 "4~15일의 해외 체류기간, 농산물 수입 업무를 위임받아 중국에서 검사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신씨는 재산도피가 아닌 사업상 목적으로 해외에 출입했을 것이라는 점이 짐작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국세청장은 신씨의 출국이 사업상 정당한 목적 없이 이뤄진 것이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아무런 근거 없이 은닉재산 해외도피 및 국외도주 우려가 있다며 출국금지를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 것으로 재량권을 일탈.남용해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앞서 지난 1985년 농산물 도매.무역회사를 설립해 운영하다 2001년 폐업한 신씨는 사업과 관련해 2009년 10월을 기준으로 6억3000여만원의 국세를 체납했다. 이에 세무당국은 신씨가 보유한 영농조합법인 주식과 토지를 압류했지만 체납세액에 현저히 미달하자 '신씨가 최근 2년간 5회 이상 국외출입을 해 재산 해외도피 우려가 있다'며 출국금지를 요청했고, 법무부는 2009년 10월부터 지난 4월까지 5차례에 걸쳐 '6개월간 출국금지' 처분을 내렸다. 이에 신씨는 S사로부터 농산물 수입에 관한 업무를 위임받아 사업상 목적으로 출국하려는 것으로 정당한 사유가 있다며 소송을 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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