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병원 의공학과 허동은 교수와 하버드 하버드 위스연구소 도널드 잉버 교수 연구팀은 폐의 기본 구성요소인 폐포의 구조와 기능을 재현하는 장기모사 시스템을 이용해 중증 폐질환을 모사할 수 있는 마이크로칩을 개발했다고 22일 밝혔다.
이 칩을 통해 항암치료의 심각한 합병증으로 알려진 폐부종의 새로운 원인을 처음으로 알아냈다. 또 현재 개발 중인 치료제가 폐부종 치료에 효과적인 것을 밝혀냈다.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임상실험의 전 단계에서 세포배양실험이나 동물실험을 한다. 그러나 이 실험들은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며 다양하고 복잡한 인체 환경을 정확히 모사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연구팀은 그 대안으로 인체 장기의 구조와 기능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장기칩을 개발하고 여기에 개발 중인 약을 실험함으로써 약의 임상효과를 정확히 예측하는 실험모델을 구상했다.
폐포는 허파로 들어간 기관지의 끝에 포도송이처럼 달려 있는 작은 공기주머니로 이산화탄소가 혈액에서 나오고 산소가 혈액으로 들어가는 장소이다. 폐부종은 폐와 연결된 혈관내벽조직이 손상돼 체액이 폐포로 들어가 심한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무서운 질환이며 피부암이나 신장암에 쓰이는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자주 발생한다.
연구팀은 폐포의 기능을 재현하기 위해 메모리카드만 한 크기의 투명한 플라스틱 칩 내부에 두 개의 미세 세포배양공간을 만들었다. 위에는 공기가 지나는 폐포 세포를, 아래에는 혈액이 흐르는 모세혈관 세포를 배양한 후 두 세포 사이는 물질 이동이 가능한 분리막을 세웠다. 분리막 양쪽에는 주기적으로 진공상태를 만들어 칩 전체가 주기적으로 수축 운동을 하도록 만들어 우리 몸이 호흡할 때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폐포의 모습을 동일하게 재현했다.
연구팀은 이 칩을 통해 항암제에 의한 폐부종의 발생과정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연구팀은 칩 하단의 모세혈관 채널에 피부암, 신장암 항암제(IL-2)를 투여했더니 IL-2가 모세혈관 세포와 폐포 상피 조직을 손상시켜 모세혈관 채널 속 체액이 폐포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실험 4일 째에는 공기로 차있던 폐포 전체가 체액으로 채워졌다. 또한 이 과정 동안 폐포에서 자주 관찰되는 섬유소(fibrin)의 형성을 성공적으로 재현했다.
이 과정에서 연구팀은 우리 몸의 호흡과정에서 생기는 폐포의 수축이완 작용이 항암제에 의한 폐부종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연구팀은 대조군에는 칩의 수축운동 없이 모세혈관 채널에 IL-2만 투여했고 비교군에는 칩의 수축운동과 함께 IL-2를 투여했다. 그 결과 비교군에서 더욱 많은 체액이 폐포 채널로 침투했다. 이는 폐포의 수축 이완 과정이 세포 사이를 더욱 벌어지게 하고 그 틈으로 항암제가 들어가 폐포 상피조직을 더욱 손상시켜 폐부종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또한 장기칩을 이용해 현재 개발 중이 폐부종 치료제가 치료효과가 있음을 입증했다. 연구팀은 비교군에서는 모세혈관 채널에 IL-2와 함께 앙기오포이에틴(Angiopoietin-1)이나 GSK에서 개발 중인 'TRPV4'를 투여하고 대조군에는 IL-2만 투여한 후 비교 관찰했다. 6시간 후 대조군에서는 조직 투과성(Barrier permeability)이 정상상태와 비교했을 때 15배까지 증가했으나 비교군에서는 통계학적으로 유효한 투과성의 증가가 측정되지 않았다. 조직 투과성이란 모세혈관내의 체액이 폐포로 얼마나 침투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비교군이 대조군에 비해 10배 이상 체액의 폐포 침투를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허동은 교수는 "이번 연구는 마이크로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 중인 장기모사시스템들이 난치성 질병발생과정의 메커니즘의 규명하는 기초의학연구나 새로운 치료약, 치료법의 개발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연구팀이 개척하고 있는 장기칩(organs-on-chips) 기술개발은 인체의 생리학적 현상을 정확히 재현하고 예측할 수 모델시스템이 없는 의학계와 의료업계의 현실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연구 분야로 각광받고 있다.
이 연구결과는 사이언스의 자매지인 사이언스 트래디셔널 메디신(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 11월호 커버 논문으로 선정됐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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