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스트리트] ‘깡통 주택’이 소리가 요란한 까닭은?

집이 '깡통' 취급받기는 일찍이 없었다. 집은 태생적으로 '알짜'다. 뿌리 내릴 터전이 있고 그 위에 고단한 삶을 토닥여줄 똬리를 틀 수 있어서다. 급전이 필요할 땐 눈물을 머금고 밑천이 됐다. 역설적인 공식도 곧잘 만들어냈다. 닳고 낡으면 오히려 몸값이 뛰었다. 30∼40년 숙성된 빈티지 같은 집은 그야말로 상전 대접을 받았다. 재개발·재건축 단지는 그래서 화수분 같은 보물 단지였다. 부동산 시장에 '진흙 속의 진주'라는 말도 이때 생겨났다.

최근 그 알짜가 쏙 빠진 빈 껍데기 집이 많다는 소식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낳은 신조어 '깡통주택' 얘기다. 금융감독원이 주택담보대출 실태를 조사해봤더니 금융권으로부터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들 가운데 대출 비중이 평균 경매낙찰률(76.4%)을 초과하는 대출자가 19만3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경매낙찰률이 76.4%라는 것은 1억원짜리 주택이 경매에 나왔을 때 7640만원에 낙찰됐다는 의미다. 깡통으로 전락한 것이다. 집을 경매에 내놓더라도 빚이 남아 '채무의 그늘'에 갇히는 구조다. '깡통주택' 신조어가 탄생한 배경이다.

대내외 경기침체와 주택가격 하락이 결정적인 원인이다. 깡통 대출규모는 13조원에 달한다. 낙찰률 초과대출은 수도권이 18만명(12조2000억원)으로 가장 많다. 지방은 1만명(8000억원)이었다. 수도권이 지방보다 집값 하락폭이 그만큼 컸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저신용 다중 채무자와 낙찰률 초과대출자가 중복됐다는 점이다. 신용등급 7등급 이하이고 금융기관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사람이 23만명이나 된다.

깡통주택은 가계부채 폭탄의 진앙지가 될 수도 있는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 저신용 다중채무자는 이미 상환능력을 거의 소진했다. 하나같이 고금리 대출에 의존하고 있는 점도 상환 능력을 상실시키고 있다. 향후 집값이 더 내려간다면 상환불능 늪에 빠질 공산이 짙은 것이다. 당장 부실 위험군으로 분류되는 1개월 이상 주택담보대출 연체자만도 4만명으로 전원 7등급 이하의 저신용층이다.

집 소유에 대한 집착이 강한 국민적 정서도 빚 청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집이 최후의 보루인 만큼 다른 금융자산을 동원해 빚을 갚을 가능성은 작을 것이란 예고다.
선제 대응을 하지 않으면 깡통소리가 더 요란해질 수 있다. 금융회사의 건전성 부실도 배제 못한다. 10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의 호흡이 점점 가빠지고 있다.

joosik@fnnews.com 김주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