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자산운용, ING생명, 아비바그룹, 홍콩상하이은행(HSBC)….'
한때 한국 시장에서 잘나가던 외국계 금융기관들이 올 들어 줄줄이 짐을 싸거나 철수 움직임을 보이면서 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글로벌 금융허브 방안이 유명무실해지는 것으로 지적됐다.
이와 관련,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금융당국의 지나친 규제에다 금융시장도 침체됐기 때문에 규제 완화 등 정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외국계 금융기관이 한국적인 정서를 외면한 채 무리한 수익추구와 고액배당 등 현지화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에 따라 금융권은 외국계 금융기관의 영업환경과 각종 규제, 고액배당 및 현지화 실패 등에 대해 전반적인 실태조사와 함께 글로벌 금융허브 육성을 위한 개선대책을 이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금융허브 로드맵 변화 필요
우선 차질을 빚고 있는 글로벌 금융허브 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정해 다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 위해선 현재 한국에 들어와서 영업을 하는 외국계 금융사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외국계 금융사들은 한국에 들어와서 선진 금융기법 도입 등의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한국적인 정서를 무시한 '나 홀로 영업'에 대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면 일부 방카슈랑스 등 무리한 수수료 영업으로 인한 피해, 중소기업대출 지원 소홀, 서민금융에 대한 무관심, 미미한 사회공헌 활동 등이 대표적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외국계 A은행의 경우 방카슈랑스 영업을 무리하게 하다 보니 기존 보험사와 마찰이 끊이지 않고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면서 "이런 문제는 금융당국뿐만 아니라 인수위원회에서도 다뤄 제도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배당 문제도 논란거리다. 배당금액 중 상당액이 해외 본사로 송금돼 '먹튀' 논란까지 일고 있다. 씨티은행은 2010년에 799억원, 지난해에는 875억원을 본사로 송금했다.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도 지난해 810억원을 영국 본사에 보냈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국계 은행의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수수료의 경우 30%에 육박하는 고금리가 많다"면서 "서민이 많이 사용하는 카드 수수료를 높게 책정하는 것은 한국 금융 풍토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 중소기업 및 서민금융 지원에 인색한 것을 놓고서도 꾸준한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는 없었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까지 외국계 금융사들이 한국시장에서 긍정적 역할도 많이 했지만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인수위원회에서부터 글로벌 금융허브 육성을 위한 로드맵을 다시 짜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선 현재 한국에서 영업하고 있는 외국계 금융사들의 문제점 등을 정확하게 분석해 무엇이 필요하고 개선해야 할지 짚어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택과 집중.정부지원 '투트랙'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외국계 금융기관들의 가장 큰 불만은 알려진 것과 달리 세금 문제가 아니라는 게 금융당국의 분석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외국계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 보면 세금 문제에 대한 불만은 없다고 들었다"며 "다만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한국 시장은 레드오션이고 수익원이 많지 않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은행권은 이미 저금리 기조로 들어서면서 순이자마진(NIM) 수익이 크게 줄고 있다.
물론 국내 시장에 맞지 않게 예대마진 폭이 큰 신용대출에만 주력했던 영업전략도 외국계 은행들의 발목을 잡았지만 이들의 가장 큰 경쟁력인 기업금융 시장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것도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외국계 은행들이 성장하려면 투자은행(IB)이나 기업금융(CB) 시장이 커야 하는데 국내 시장은 협소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국내 은행들이 이 시장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결국 외국계 은행들이 선택한 것은 소매금융에서 예대마진과 해외 네트워크를 이용한 국제거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외국계 은행의 전략으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시중은행의 한 부행장은 "외국계 은행이 이제는 소매금융으로 토종 은행과 경쟁할 게 아니라 경쟁력이 있는 기업금융에 매진하는 것도 불경기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면서 "금융당국도 외국계 금융기관들의 철수를 손놓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제도적인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maru13@fnnews.com 김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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