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23일 원·달러 환율 하락에 맞서 시장안정대책 준비를 끝내고 발표시점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0년 하반기를 달궜던 환율전쟁이 다시 촉발되는 것 아니냐는 시장의 우려에 대해 다시 경고성 구두개입에 나선 것이다. 박 장관은 이날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경총포럼에서 "환율 하락 속도가 가파르다. 경제주체들에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한다"며 환율 변동성을 줄이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환율전쟁' 좌시 않겠다는 정부
외환시장에 대한 외환당국의 우려는 지난해 4·4분기부터 본격화된 지나치게 빠른 환율 변동성에 대한 예의주시 발언에서 이미 감지됐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2월 말 1071원으로 하락한 데 이어 올해 1월 1050원대까지 급락했다.
외환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영국 등 선진국이 경기방어나 부양을 하기 위해 일방적인 양적완화 정책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특히 원·엔 환율은 일본 아베 정권의 의도적인 외환시장 개입이 강화되면서 더욱 빠른 속도로 하락했다. 지난해 8월 말 100엔당 1446원이던 원·엔 환율은 작년 말 1239원에 이어 지난 21일에는 1187원까지 떨어졌다. 작년 엔화에 대한 원화 절상률은 19.6%로 달러화의 배를 넘었다.
주요국은 물론 국제통화기금(IMF)도 일제히 일본 정부의 처사에 반발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지난 17일 일본의 통화정책을 비판했고,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도 같은 날 "통화 쪽이 됐든 뭐든 간에 전쟁은 혐오한다"면서 "경쟁적으로 통화가치를 떨어뜨려서는 안된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박 장관도 "단기 부양에는 도움이 되지만, 국채이자 상승 등 중장기적 비용을 유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유로, 원·파운드화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2010년 하반기를 달궜던 환율전쟁이 다시 촉발되는 모습이다.
■외환대책 2단계 조치 임박
외환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 기준으로 1050원 선이 무너지면 정부당국이 직접적인 행동에 들어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다. 1050선은 당국이 마지노선처럼 여기고 그간 방어의지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시장에서는 환율이 900선마저 위협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루머가 나돌 만큼 올해가 더 심각하다는 전망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나온 이날 박 장관의 발언은 외환시장에 대한 1단계 대책으로 이달부터 외국환은행 선물환 포지션 한도를 줄인 데 이어 2단계 대책이 임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시장에서는 일단 기존 '거시건전성 3종세트'(선물환 포지션 제도,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외환건전성 부담금)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 3종 세트 외에 예상 밖의 '새로운 대책'이 나올지 관심사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들은 추가적인 규제책으로 거론되는 방안들이 외화자금시장 안정 부문에 중점을 두고 있어 환율 하락 억제에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외환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나 직접 환시 개입이 아니라면 심리적 효과 이외에 환율의 방향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판단이다.
정부는 국제공조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여러 번 밝혔다. 다음 달 15~16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선진국의 양적완화 대책을 촉구하겠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win5858@fnnews.com 김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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