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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의 물결,창조경제 혁명] (1부) 복지·성장 ‘두 토끼’ 잡는다

[제4의 물결,창조경제 혁명] (1부) 복지·성장 ‘두 토끼’ 잡는다

제4의 물결, 창조경제 혁명이란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이자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언급한 개념. 스티글리츠 교수는 기술혁명과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를 설명하며 제1의 물결(농업혁명), 제2의 물결(산업혁명), 제3의 물결(정보화혁명)에 이어 제4의 물결(창조혁명)로 패러다임이 전환한다고 예견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관련해 여야 합의가 타결되면서 창조경제를 전담할 미래창조과학부 출범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창조경제의 개념과 적용분야 및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담당 부처 공무원을 비롯해 전문가들도 '장님 코끼리 만지기' 수준으로 접근하는 실정이다. 이에 본지는 과학기술과 벤처 현장에서 이정표를 세운 데 이어 19대 국회에 입성해 창조경제 관련 법안을 마련 중인 새누리당 민병주·전하진·강은희 의원과 밀도 있는 인터뷰를 통해 창조경제의 목표와 풀어야 할 숙제를 전반적으로 짚어봤다. <편집자주>

―창조경제 개념이 모호하다. 박근혜 정부가 표방하는 창조경제의 개념과 비전은 무엇인가.

▲강은희 의원=피터 드러커가 지은 '창조와 경영자(1964)'에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란 말이 있다. 지금 개념에서는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미래를 만들어내면 미래를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산업의 모든 형태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였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추격할 게 거의 없는 상황에 왔다. 여기서 더 나아갈 방법은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도자 또는 시장 개척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선도자형 구조로 바꾸는 일을 미래창조과학부가 열어야 한다.

▲전하진 의원=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악기를 잘 만드는 데 주력해 왔다. 이제는 그 악기를 잘 조합해서 음악을 만들어야 할 시기다. 나는 그것이 창조경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막연하고 아무것도 안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연주회장에서 박수를 치는 건 아름다운 음악 때문이지 악기를 보고 박수 치는 건 아니다. 연주자들이 악기를 통해 음악의 톤을 줄일 데는 줄이고 강조할 부분은 강조하도록 구현해내는 게 창조경제다.

▲민병주 의원=새누리당은 미래와 행복을 키워드로 잡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창조경제를 내세웠다. 창조경제는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 창조경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큰 플랫폼과 생태계라고 할 수 있는 큰 틀을 잡아줘야 한다. 이를 통해 성과를 얻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단기적인 것과 중.장기적인 목표로 나눠 가야 한다. 단기적으론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목표를 달성하고, 중장기적으론 과학기술을 육성해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창조경제를 통해 구현될 미래의 신성장 업종이나 산업군을 예상한다면.

▲강 의원=현 정부에서 몇 개 부문은 성과가 나올 것으로 본다. 가령 우주산업을 해보겠다고 하면 기업도 기대감이 생겨 항공쪽 연구나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으로 영역을 넓혀나갈 것이다. 당장 우주산업 관련 일감이 생기진 않지만 연구소가 생기고 우주를 연구하다 보면 부산물이 생길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에서도 이처럼 융합을 통한 업종 확대를 지원해야 한다. 생각을 오픈시키는 것이 창조의 원천이다. 기존 개념을 무너뜨려야 우리 산업이 퍼스트 무버로 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걸림돌을 제거하는 건 정부와 법이 맡아 해결해주고 예산이 뒷받침하면 된다.

▲전 의원=창조경제와 관련한 세 가지 인프라 구축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기반으로 각종 산업군이 무궁무진하게 확산될 수 있다. 첫번째로 스마트그리드를 꼽을 수 있다. 스마트그리드라는 인프라가 제대로 깔리게 되면 전력과 가전, 주거 등이 하나로 융합되면서 막대한 산업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다. 다음이 ICT다. 1990년대 초고속인터넷망이 깔리면서 게임, 금융, 인터넷 등 수많은 벤처기업과 콘텐츠가 생산됐다. 이제는 ICT 플랫폼을 강화해 헬스케어나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부가가치를 올려야 한다. 세번째로 '전자정부 3.0'이다. 상품 하나를 해외에 팔아도 이를 유통시키는 플랫폼을 가진 회사가 수익을 많이 얻게 된다. 특히 문화 콘텐츠나 소프트웨어를 해외에 팔 경우 이를 가동시킬 플랫폼이 없으면 수출에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소프트웨어 수출에 앞서 플랫폼을 만들고 이를 먼저 팔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전자정부 3.0을 통해 구축한 국가정보관리 시스템을 특화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전자정부에서 앞서가고 있으니 이걸 플랫폼화해서 해외로 적용하자는 것이다.

▲민 의원=지금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는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 즉 창조경제를 통해 어떤 특정 업종이 뜰 수 있다는 식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창조경제의 가능성을 좁게 만드는 위험한 생각이다. 아울러 지금은 한때 유행했던 식으로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씨앗을 많이 뿌려야 한다. 코닥이 망한 이유가 필름에만 집중해서다. 특히 주목할 점은 기초연구에서도 '풀뿌리 연구'란 게 있다. 사람들이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려면 작은 연구를 쫙 뿌려놓은 뒤 나중에 여기저기에서 성과가 나오는 것이다.

―창조경제의 핵심 뼈대를 이루는 요소는 무엇인가.

▲강 의원=미래창조과학부는 개념은 없는데 기술만 있는 경우와 기술은 아직 없는데 개념만 있는 경우 등 두 가지 상황을 모두 개척해야 한다. 기술혁명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개념 융합 혁명'이 나타나지 않고는 새로운 상품을 만들 수 없다. 즉 생각을 하지 못해 제품을 못 만든다는 뜻인데 아이폰도 이에 해당한다. 다른 예를 들자면 아프리카엔 1달러짜리 정수기가 있다. 이 제품이 늦게 세상에 나온 것은 이미 관련기술은 있는데 싼 정수기를 만들려는 생각이 부족해서였던 것이다. 반대로 상상력은 풍부한데 기술이 부족해서 인공지능 로봇을 못 만드는 경우도 있다.

▲전 의원=쉽게 말하면 악보라고 할 수 있다. 따로 노는 것을 조화시킬 수 있는 게 악보다. 자동차와 IT, 배와 IT, 문화와 IT가 어떻게 결합해서 어떤 노래가 만들어질 것이냐는 악보에 달렸다. 상상력을 정교하게 작곡한 악보와 악보를 통해서 각 부처 악기가 전문성 있게 소리를 내주면 된다.

▲민 의원=기초과학이 성과를 내는 데 오래 걸리고 당장 현실과 무관하다는 관점이 있는데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지금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웹사이트를 처음 만든 곳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다. 연구 과정에 빠른 소통을 위해 개발된 기술이 사람들에게 일반화된 경우다. 첨단과학은 시도하지 않은 여러 가지를 도전정신으로 밝혀내는 것이고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우리 생활에도 적용된다. 핵융합에서 나온 플라스마도 실생활에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기초연구는 당장 눈앞에 성과로 나타나지 않지만 파생되는 게 많아서 중요한 것이다.

―질 좋고 많은 일자리가 창조경제를 통해 창출 가능한가.

▲강 의원=정부가 모든 일을 도맡아 하려들지 말고 민간산업을 지원하고 키워주면 산업 생태계가 선순환 구조로 갈 수 있다. 2005년에 전자정부를 만들면서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민간에 맡기는 대신 정부가 직접 만드는 바람에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망했다. 당시 정부가 민간 벤처들에 소프트웨어를 싸게 공급해달라고 했으면 벤처기업들의 미래가 풍요로워졌을 것이다.

▲전 의원=창조경제를 통해 질 좋고 많은 일자리를 얻어봤자 좋은 일자리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지 않는 한 소용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한국인들이 일에 대해 갖고 있는 관점은 너무나 천편일률적이고 본인의 행복과 관계 없는 경우가 많았다. 남들이 하니까 좋아 보이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좋은 일자리이고 고된 노동과 관련된 일은 나쁜 일자리라는 식의 관점에선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꿈과 끼를 살려주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점을 상기해야 한다. 산업 간 융합을 통해 발생하는 새로운 일자리는 개인의 꿈과 상상력이 결합될 때 가능하다. 그 속에서 개인이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좋은 일자리가 되는 것이다.

▲민 의원=가령 특정 산업군이 부상하면서 덩달아 컨설팅 분야가 늘어날 수 있다. 지금까지 정부의 일자리 창출 방식은 수요자에게 컨설팅 없이 돈만 나눠주는 식이었다. 그러나 컨설팅은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기술평가를 하려면 기술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농업도 요즘엔 기능성 농산물에 맞게 소량생산 체제로 바뀌고 있다. 과거 생명공학 연구자들이 이와 관련된 연구를 많이 했는데 이런 연구가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이 중간을 연결할 수 있는 부분을 정부가 찾아주는 게 필요하다.

―한국의 산업화시대 주역은 대기업이었다. 창조경제 주도자는 중소벤처가 될까.

▲강 의원=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역할은 여전히 존재한다. 벤처가 주역이 되겠지만 그렇게 되려면 대기업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가령 NHN의 성장에는 삼성의 역할이 있었다. 문제는 작은 벤처기업을 어떻게 대기업으로 키우느냐에 달렸다. 중소기업이 매출 1조원 규모로 성장하는 데는 평균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현재 매출 100억원인 회사를 정해진 기간에 1000억원 이상의 중견기업으로 키우고 매출 1000억∼2000억원대 회사를 1조원대 이상의 대기업으로 키우는 방법을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민 의원=옛날 대가족제에선 맏형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공부를 잘해서 동생을 먹여살리는 식이었다면 현재는 여러 사람을 교육해서 본인 역할을 다하는 식으로 세상이 변했다. 창조경제 패러다임도 변하고 있다. 대기업은 이제 정부 지원 없이도 독자적인 힘으로 성장을 만들어 갈 수 있으니 창조경제는 중소기업을 육성·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게 좋다.

―국내외 글로벌 기업 가운데 창조경제에 부합하는 모델을 꼽는다면.

▲강 의원=사실 기업이 원초적으로 창조경제를 안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구글의 경우 직원 처우가 매우 혁신적으로 알려졌고, NHN도 내부 혁신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창조경제의 모델로 생각해볼 수 있다. 카카오톡도 굉장히 혁신적이다. 새로운 개념을 누가 만드느냐가 중요하다는 관점에선 아이폰을 꼽을 수 있다.

▲전 의원=지난 1995년 초고속인터넷이 깔리면서 촉발된 사업들이 있다. 망 하나가 깔렸는데 창의적 콘텐츠가 생성되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었다. 아울러 2009년 아이폰이 만들어지면서 삼성의 갤럭시도 탄생한 것이다. 만약 국가가 산업 보호를 한다고 아이폰 수입을 막았으면 지금 갤럭시노트가 존재하겠는가.

▲민 의원=모두 창조경제를 말하면서 스티브 잡스와 아이폰을 떠올린다.
나는 창조경제의 핵심 철학을 우선 이해하고 우리가 그것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할 단계라고 생각한다. 특히 현 정부가 5년 내에 모든 것을 끝내겠다고 생각하면 그건 과거의 추격자는 맞지만 선도자는 아닐 것이다. 우리 스스로 창의력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기존 모델과 다를 게 없다.

정리=jjack3@fnnews.com 조창원 박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