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곰을 잡는 포수라고 했다. 의심을 품자 한 손에 엽총을 든 채 포획한 불곰과 함께 찍은 인증샷을 보여주었다. 옆에선 인디언 사내가 함박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의심의 뿌리를 뽑아버릴 작정이었는지 집으로 저녁 초대를 해 곰 고기 샤부샤부를 해주었는데 곰인지 멧돼지인지는 확실치가 않았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그가 뚜껑 덮인 큰 프라이팬을 안고 나타났다. "한국에서 유명한 드라마 감독이 왔으니 특별요리를 했소. 자! 감독님 열어보슈!" 뚜껑을 여는 순간 모두 기겁을 했다.
프라이팬 위에는 아직도 시커먼 털이 달린 큰 짐승의 발이 우뚝 서 있었다. 그날이 내 생애 처음으로 곰 발바닥을 맛본 날이다. "이 감독, 산속에서 곰을 발견하면 당장 총을 쏘면 안돼요. 곰은 사람과 마주치면 도망을 가요. 하지만 산마루에 오르면 꼭 멈춰서서 우리를 쳐다본다우. 그 순간! 그 순간 탕, 쏘는 거요. 곰을 맞혔지? 그럼 그냥 36계 줄행랑을 쳐야 됩니다." "왜죠?" "잡으려고 달려가면 당신은 그놈 앞발에 산산조각 부서집니다. 도망을 쳤다가 다음날 가보면 그 근처 1㎞ 안 어딘가에 쓰러져 있어요." 당신, 포수 맞습니다! 너무 가난해 어린 시절 캐나다로 이민을 갔고 인디언과 친해져 곰 잡는 포수가 됐다고 했다. 어릴 적 꿈이 배우여서 드라마 감독을 만났으니 잘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다음해 또 그를 만났다. "이 감독, 내가 에덴동산을 발견했는데 모시고 가리다." 또 무슨 쇼일까 궁금해 따라나섰는데 산이 아니라 바다 쪽이었다. "나 포수 접고 어부 되려고 배를 2척 샀소." 반신반의, 우리 일행 4명은 만경창파 밴쿠버 앞바다로 나아갔다. '온갖 과일과 곡식이 풍성하고 평화로움이 가득 찬 낙원의 땅'으로 가는 중에 그는 저녁 요리에 쓸 킹크랩을 잡으려고 바다 가운데 통발 몇 개를 놓았다. "자, 2시간만 에덴동산 구경하고 옵시다."
배가 닿은 곳은 밴쿠버에서 제법 떨어진 인적 없는 무인도였다. 그는 하선 때 작은 호미 하나씩을 나눠주며 말했다. "달려가서 저기 보이는 모래사장을 파 보셔." 우리는 아담처럼 웃통을 벗어던지며 달려가 백사장을 헤집기 시작했다. 놀라웠다. 울룩불룩한 모래 밑은 온통 큰 조개와 소라 마을이었다. 조개는 암소 귀만큼 컸고 소라는 큰 나팔이었다. 어부는 조개잡이에 넋이 나간 우리를 깨워 언덕 너머 갯바위로 몰아갔다. 그곳은 더 놀라웠다. 가까이 가보니 바위는 바위가 아니라 온통 굴이었다.
정말 에덴동산이 존재한다면 이런 풍경일 것이다. "이 감독, 한국 관광객들을 이 에덴으로 모셔오면 드라마틱한 관광상품이 되지 않겠소?" "대박입니다! 어부님, 당장에 재벌 됩니다." 진심이었다. 그날은 행운이 줄을 이었다. 오는 길에 통발을 올리니 대게가 열댓 마리나 들어있었다. '법으로 1인당 딱 두 마리만 허용됨.' 그는 여덟 마리만 챙기고 모두 바다에 던졌다.
1년 후 한국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어부님, 사업 잘 되시죠. 에덴동산도 잘 있죠?" 그는 재빨리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소리를 냈다. "? ?" 사연인즉슨 그후 그는 한국 아줌마, 아저씨 관광객 몇 팀을 섬으로 안내했다.
그들은 지천으로 깔린 조개, 굴, 소라에 완전 혼이 나갔고 돌아오는 배는 하마터면 바다에 가라앉을 뻔했다. 그때야 어부는 자신이 한국을 떠난 게 이미 30년 전이라는 걸 알았고 배를 팔았다고 했다. "감독, 난 에덴동산이 어디 붙었는지 몰라!" 그는 블랙코미디 '에덴동산'의 배우로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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