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DC에는 국립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있다. 자연사 박물관, 역사 박물관, 항공우주박물관 등 많은 박물관과 함께 워싱턴의 심장부인 내셔널 몰에 자리하고 있다. DC 방문객 대부분은 박물관 순례길에 자연스럽게 이곳에 들러 유대인들의 처참한 운명에 다시 한번 가슴을 저리게 된다. 무심코 지나치는 관람 코스지만 조금 이상하다. 왜 미국의 수도에 유대인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있을까. 더구나 국립박물관이라니.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1993년 완공된 이래 올 4월까지 30년 동안 3000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백악관 등 관광을 위해 워싱턴DC에 온 세계인들을 상대로 연평균 100만명씩 나치 독일의 야만성과 유대인의 참상을 각인시킬 기회를 앉아서 만드는 셈이다.
홀로코스트 박물관의 2013년 연방정부 예산안은 5180여만달러. 2012년 결산은 9200여만달러. 예산과 비슷한 나머지 운영자금은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미국인들 중에는 유대인 관련 시설에 세금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 의회는 과거 박물관 건립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바 있다. 따라서 박물관 측이 예산 걱정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그만큼 막강한 유대인 파워를 상징한다.
홀로코스트를 둘러싼 유대인들의 활동은 이처럼 현재진행형이다. 며칠 전 워싱턴포스트지에는 DC 카운실(지방의회)이 청원 심사 청문회를 개최한 뉴스가 실렸다. 청원은 DC 지역 한 도로를 디미타르 페셰프(Dimitar Peshev) 거리로 명명해 달라는 내용이다. 2차대전 당시 불가리아 의회 의원이던 페셰프가 유대인들을 구한 공로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카운실은 청문회 후 조만간 표결로 인정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예로 보아 디미타르 페셰프 거리 탄생은 시간문제다. 페셰프의 유대인 구출기가 허위 사실이 아닌 한 청원 기각은 생각하기 어렵다.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위치한 도로명은 라울 왈렌버그(발렌버그)(Raoul Wallenberg) 플레이스다. 원래는 15번가이던 도로 일부를 헝가리 유대인 구출에 공을 세운 스웨덴인 왈렌버그를 기리는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도로명 변경을 위해 1985년 연방의회는 특별법까지 제정했다.
미국은 홀로코스트가 발생한 장소가 아니다. 홀로코스트에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미국에서 홀로코스트가 거의 신성시되다시피 한 이유는 무얼까. 피터 노빅은 이를 유대인들의 의도적인 선택에 따른 결과라고 분석한다. 2차대전 후 한동안 유대인들은 나치의 학살극 논의 자체를 꺼렸다. 자신들이 처참한 피해자로 부각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미국 거주 유대인들은 유럽에서 일어난 사태를 알지도 못할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며 집단학살의 피해자라는 사실이 정치적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깨달으면서 태도가 바뀌기 시작한다. 침묵을 지키던 유대인들이 관련 책과 논문 등을 쏟아내면서 변방에 머물던 홀로코스트는 일약 유대인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된다. 홀로코스트라는 일반 명사는 히틀러에 의한 유대인 학살이라는 고유명사로 쓰이게 되고 유대인들에게 홀로코스트는 가장 강력한 도덕적 자산(moral capital)이 됐다. 2000년 기준 홀로코스트 관련 문헌 1만여종이 쓰였고 그 대부분은 1980~1990년대 쓰인 것이라고 한다.
최근 독일 정부가 나치 피해 유대인들에게 1조원가량을 추가로 지급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마침 일본 정치인들이 위안부 문제 등으로 우리의 화를 돋우고 있던 터라 더욱 놀랍다. 망언을 늘어놓는 일본과 대조적이라는 비판이 봇물을 이루었다. 익숙한 풍경이다.
유대인은 역사상 발생한 집단학살의 유일한 피해자가 아니다. 더 참혹한 피해 사례도 많다. 그들 중 유대인들만이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가해자를 압박하고 (미국처럼) 중립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희생의 의미를 각인시킨 집단이다. 피해자의 차이가 가해자의 반응의 차이를 낳은 점도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의도적인 선택의 결과가 오늘날 독일의 태도에, 우리의 선택의 결과가 일본의 반응에 일정 부분 반영돼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역사는 독일과 일본을 비교하고 일본의 변화를 촉구하는 게 부질없는 노릇임을 증명한다. 우리가 유대인들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서는 우리만의 도덕적 자산을 만들 수도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우리와 유대인의 다른 점을 연구해 보자.
노동일 경희대 교수·美시러큐스대 방문교수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