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스앤젤레스=강일선 특파원】 100만 명의 한인이 거주하는 남부 캘리포니아주는 부동산 시장만 놓고 보면 경제가 완전히 회복된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집값이 상승하고 있다.
남부 캘리포니아의 중심지 로스앤젤레스(LA)엔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집 앞에 팔려고 내놨다는 'For Sale'이란 푯말이 곳곳에 꽂혀 있었지만 지금은 눈 씻고 봐도 찾아보기 힘들다.
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앞으로 주택값이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에 부풀어 아예 매물을 내놓지 않는다. 집을 팔려고 했던 사람들도 서둘러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다. 이러다 보니 집을 사려는 사람들은 많은데 공급 부족으로 거래가 형성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LA와 인근 지역에 있는 주택들은 지난 2006년 최고가의 80~90% 선을 호가하고 있다. 고급 동네인 비벌리힐스와 행콕파크 지역은 이미 최고가에 도달했거나 넘어섰다.
캘리포니아주 부동산중개인협회(CAR)에 따르면 지난 3월 캘리포니아주 단독주택 중간가격은 37만9000달러(약 4억3000만원)로 전월 대비 14% 올랐으며 전년 동기의 29만5600달러(약 3억3500만원)에 비하면 무려 28%나 급등했다. 월간 상승률로는 지난 1979년 이후 34년 만에 최고치다.
다만 가격은 오르고 있으나 거래는 줄고 있다. 지난 3월 캘리포니아에서 판매된 단독주택은 연율 41만7500채로 전년 동기의 43만9300채보다 2만2000여채가 감소했다.
판매가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집 소유주들이 매물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부동산 시장은 파는 사람을 위한 시장(seller's market)으로 바뀌었다. 매물이 나오더라도 다수의 구매자가 달려들어 웃돈을 줘야 매입이 가능할 정도다.
주택시장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대도시에서 근교지역으로 주택 붐이 확산되고 있다. LA에서 주택 거래가 끊기다시피 하자 LA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다이아몬드바나 로렌하이츠로 열기가 번지고 있다. 한인과 중국인 등 아시아인이 밀집해 있는 이 지역에선 요즘 매물이 나오기가 무섭게 팔려 나간다.
LA에서 동쪽으로 1시간~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샌버나디노 지역도 집값이 크게 오르고 있다. 이 지역은 아직도 매물이 많이 나와 있지만 빠른 속도로 소화되고 있다.
이곳엔 2000년대 중반 주택 붐과 함께 대단위 주택단지가 들어서게 됐다. 단기간에 수만채에 이르는 과도한 주택 공급이 이뤄지자 주택업자들은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도 대출하기 시작했고 돈 없이도 집을 살 수 있는 '계약금 면제(No Down Payment)'라는 기상천외한 방식을 선보였다.
전국적으로 비우량주택담보(서브프라임 모기지) 비율이 가장 높았던 지역 중 하나가 바로 이곳이다. 돈을 상환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서브프라임을 담보로 발행한 채권(MBS)의 신용등급은 추락했고 나머지 채권까지 리스크가 높아지게 됐다.
부실화된 채권을 다량으로 보유한 금융기관들은 파산하거나 다른 기관에 팔렸고 급기야 세계 금융공황으로 비화됐다. 몇 해 전 샌버나디노시가 파산신청을 한 것도 주택시장 붕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금융위기 동안 이 지역 주택가격은 최고치에 비해 무려 60~70%나 폭락했다. 그러나 이제 이곳 주택시장도 빠른 속도로 되살아나고 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최고가의 40~50%까지 회복했다.
대다수 부동산 전문가들은 남부 캘리포니아주 주택시장 전망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가격이 급히 오르다 보니 주택가격이 대출기관의 감정가보다 훨씬 높아지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은행은 감정가에 근거해 대출해주기 때문에 주택 구매가격과 감정가의 차액을 구입자가 부담해야 한다. 아직까지는 현금을 갖고 있어야만 집을 살 수 있는 비정상적인 상태지만 남부 캘리포니아주의 주택시장이 장기침체에서 벗어나 강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 경제에 희망을 주는 긍정적인 신호가 되고 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