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들어 평년보다 일찍 찾아온 이상고온에 따른 냉방기 사용 증가와 원자력발전소 가동 중단 사태 등으로 전력수급에 초비상이 걸린 가운데 법정 내 변호사 및 검사에 대한 '드레스코드(복장규정)'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소송 당사자인 변호사 업계는 에너지 절감과 재판의 효율성 제고 차원에서 한시적으로 노타이에 간편한 정장차림으로 법정에 출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비해 대부분의 판사들은 넥타이와 재킷 착용은 최소한의 법정 예절이라고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변호사들 "간편 정장 허용해야"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이달 초부터 에너지 절약을 위해 여름철 복장 간소화 지침을 마련해 오는 8월 31일까지 시행하고 있다. 대법원장, 대법관 등 고위 법관들부터 솔선수범해 재판을 제외하고는 넥타이를 매지 않고 반팔 와이셔츠를 입고 사무를 보도록 했다.
하지만 변호사들 상당수는 이번 지침에 법정 내 변호사와 검사 등 소송당사자들에 대한 복장규정이 빠져 있는 것을 문제 삼고 있다. 법원 청사 내에서 이동하는 판사들과 달리 검사나 변호사들은 두꺼운 사건서류들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법정까지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체감온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데도 이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
특히 제한된 실내온도에서 여름철 재판을 진행하다 보면 땀이 흐르더라도 부채질을 하거나 겉옷을 벗는 것은 자칫 재판부로부터 예의가 없다고 비쳐 사건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불편하더라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불만이다.
A대형로펌의 한 중견 변호사는 "법조계에서는 여름철에도 재킷에 넥타이를 매는 것이 '재판장에 대한 예우'라는 이유로 관행처럼 돼있다"며 "그러나 젊은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창문도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정장을 한 채 재판을 하는 것은 불쾌지수만 높여 원활한 재판 진행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지배적"이라고 지적했다.
■법관 "정장은 최소한 법정 예절"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는 재판예규상 법정 안에서 자세와 복장을 단정히 하라는 규정은 있어도 정해진 복장규정은 없다는 입장이다. 여름철 법정 내 간소복 차림은 사실상 재판장 재량으로 얼마든지 실시 가능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판사들 사이에선 넥타이 정장은 당연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일부 젊은 법관들 중에는 여름철 간소복 차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대부분은 각 나라 사법부마다 전통이 있듯이 법정 예절과 품위 유지를 위해 넥타이 정장 관행은 지켜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단정한 복장'이란 규정 자체가 애매한 만큼 이를 구체화하거나 법원의 공식적인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재판장이 여름철 간소복을 허락하지 않는 현실에서 섣불리 노타이에 반팔 차림으로 재판에 임하는 것은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며 "국회도 최근 노타이 회의를 시행하고 있고, 영국에서도 300년 넘게 이어져온 위그(가발) 착용이 시대착오적이고 위압감을 준다는 이유로 2008년 형사재판을 제외한 모든 법정에서 폐지된 만큼 실용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한변호사협회 노영희 수석대변인은 "단정한 용모로 재판에 임하는 것은 재판부에 대한 예우"라면서도 "계절적 특수성을 감안할 때 캐주얼 차림이 아닌 이상 재킷이나 넥타이에 긴팔 와이셔츠를 입는 것보다는 반팔 차림에 노타이로 변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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