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금융사들의 퇴직연금시장 엑소더스(대탈출)가 현실화되고 있다. 대형 금융사에 비해 경쟁력에서 밀리고, 특히 금융당국이 하반기에 퇴직연금 수수료 공시제도를 시행키로 함에 따라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퇴직연금시장은 금융지주 계열 은행과 대기업 계열 보험·증권사로 재편될 전망이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증권이 최근 퇴직연금 사업을 철수한 것으로 확인됐고, MG손해보험은 사업자 철수와 관련해 금융당국에 철수의사를 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씨티은행에 이어 이번에 농협증권이 철수하면서 금융권 전체 퇴직연금 사업체는 기존 58개에서 56개로 줄게 됐다. 여기에 지난해 시장 철수 의사를 밝힌 메리츠화재의 철수작업도 계약정리, 약정이율 손실보전 등 마무리 단계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올해 하반기 금융당국의 퇴직연금 수수료 제도가 시행되면 계약 체결실적이 없거나 미미한 20∼30여개 중소 금융사가 철수할 가능성이 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증권, 보험사 간 달랐던 수수료 부과 방식 및 대상을 은행.증권 방식으로 통일하는 내용의 퇴직연금 표준약관을 시행할 방침이다. 금감원은 연내 퇴직연금 업무처리 모범규준도 시행할 예정이다. 모범규준이 시행되면 퇴직연금 종류별(DB, DC, IRP)로 운용관리수수료, 자산관리수수료, 가입자교육수수료, 중도해지·계약이전수수료 등의 내역을 공시하게 된다. 이때 수수료 부과기준 및 수준을 명시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상대적으로 퇴직연금 유치 규모가 작은 금융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가뜩이나 금융지주 계열 은행, 대기업 계열 보험·증권사 등에 자금이 몰려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경쟁할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거래은행 등 해당 기업과 관련이 있는 금융사를 중심으로 퇴직연금을 계약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현재 퇴직연금 시장의 경우 사실상 대형 금융사와 중소형사 간 양극화가 극심한 상황이다.
지난 3월 말 현재 운용관리계약 기준으로 전체 퇴직연금 시장에서 점유율이 0.5%를 밑도는 금융사는 수협중앙회(0.1%), 제주은행(0.1%), 신한생명(0.2%), 현대라이프(0.1%), 하나대투증권(0.2%) 등 19개사에 달한다. 이 가운데 SC은행, 메트라이프, 메리츠화재, 한화손보, MG손보, 신영증권 등은 0.1%에도 미치지 못한다.
교보증권, 하나생명, 한화증권, SK증권은 운용관리계약 체결실적이 없고 동부증권, SK증권은 자산관리계약 체결실적이 없다.반면 신한은행(9.5%), 국민은행(9.3%), 우리은행(8.0%), 기업은행(6.7%), 하나은행(4.4%), 농협은행(4.2%), 산업은행(3.4), 삼성생명(14.0%), 교보생명(3.9%), HMC(6.5%) 등 상위 10개사의 시장점유율은 69.9%에 달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퇴직연금의 경우 전산시스템 구축 등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를 갖춰야 한다"며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한 회사들은 하반기 수수료 비교공시가 시행되면 등록말소를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kim091@fnnews.com 김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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