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주 버펄로, 시러큐스 등 인근 지역을 거치는 버스투어를 했다. 이름하여 '칼리지 어포더빌리티 투어(college affordability tour). '부담 가능한 대학 만들기 투어'라 할까. 한마디로 현재의 대학 등록금이 평균적 미국인에게 부담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는 것이다. 과도한 교육비 부담으로 인해 중산층 이하의 대학교육 기회가 봉쇄됨으로써 미국인의 계층 이동을 위한 통로가 막히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한다.
2011년 미국의 학자금 대출액은 사상 처음 한 해 1000억달러를 넘어섰고 전체 미상환 금액은 1조달러를 돌파했다. 최근 워싱턴 정가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가 연방정부 대출 학자금 이자율 문제였던 게 이상하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은 버펄로대학 연설에서 개인적 소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장학금과 대출 등으로 대학과 로스쿨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자신들에게는 행운이었기도 하지만 동시에 큰 부담이 됐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로스쿨 학비만으로 4만2753달러의 대출금을 안고 졸업했다고 한다. 미셸 오바마의 대출액은 그보다 약간 적은 금액. 대학 졸업생 일인당 평균 2만6000달러의 대출금에 비하면 상당한 금액이다. 부부는 2004년 오바마가 상원의원이 되기 직전, 그것도 190만달러의 책 출판계약 덕분에 융자금을 다 갚을 수 있었다.
문제의 주범은 물가상승률을 훨씬 앞서는 대학 등록금. 올해 미국 4년제 대학 등록금은 주거주자 기준 평균 8655달러, 등록금과 숙소 등을 포함한 학부생들의 전체 교육비는 평균 약 2만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 주립대학 기준. 이른바 아이비 리그 등 5만달러 이상 학비가 소요되는 사립대학만 149개에 달한다. 이처럼 치솟는 등록금을 잡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해결책은 대학평가제다. 연방정부가 2015년까지 등록금 수준, 학생 졸업률, 졸업자 소득 등을 지표로 대학을 평가해 등급을 매긴다는 내용이다. 높은 등급의 대학은 연방재정과 학자금 대출금 한도를 더 지원받게 되며 정보공개를 통해 수험생과 학부모의 대학 선택을 돕는다는 것이다.
관건은 오바마 대통령의 구상이 여론과 의회의 장벽을 넘을 수 있는가다. 정보수집과 평가 등은 행정부가 할 수 있지만 재정지원 연계 문제는 예산을 다루는 의회의 몫이다. 특히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의 동의를 얻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의회를 움직이기 위해 필수적인 여론의 지지도 쉽지 않을 것이다. 정부, 특히 연방정부의 교육에 대한 직접적인 간섭은 미국에서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이든 과장이든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미국 유수 대학들이 등록금 책정에 대통령의 눈치를 볼 리도 만무하다.
이래저래 오바마 대통령이 제기한 대학 등록금 문제는 미국 문제라기보다 바로 우리 일처럼 느껴진다. 반값등록금, 등록금 인하, 대학평가제 등은 바로 우리나라에서 현재 진행형인 사안이기 때문이다. 아이비 리그 등을 둘러보며 국민소득 등을 고려해도 우리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 등록금 액수에 놀란 기억이 생생하다. 대학의 경쟁력이 돈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겠으나 돈의 뒷받침이 없는 경쟁력 향상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세계적인 대학과 경쟁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지만 등록금 인하 압력에 시달리는 게 오늘의 한국 대학 현실이다.
속단은 어렵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구상은 야심찬 제안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미 주요 언론을 중심으로 활발한 찬반 논의가 진행 중이다. 대통령이 방문한 덕인지 지역 언론이나 대학들은 호의적 반응을 보인 데 비해 일부 언론과 대학의 부정적 반응도 나오고 있다. 수학공식처럼 교육을 재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부가 세계 최고 수준의 미국 대학들을 만들어낸 게 아니라는 비판이다. 이처럼 오바마 대통령의 문제 제기는 대학 등록금을 넘어 미국의 고등교육에 대한 활발한 논의로 이어질 것이다. 해결책까지는 아니어도 자연스러운 여론의 흐름 혹은 국민적 공감대를 만드는 계기는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경우 반값등록금 요구는 정부가 대학 등 고등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요구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교육에 대한 국민의 부담이 어느 정도여야 하며, 폭증하는 복지수요 가운데 교육에 얼마나 더 투자할 여력이 있을 것인가다. 대통령이 주도하든 누가 주도하든 활발한 토론을 통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의 장이 마련되는 걸 보고 싶다.
노동일 경희대 교수·美시러큐스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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