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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집단소송’ 하다간 소송비만 날릴 수도

#. 지난 2005년께 금융소비자연맹 주도 아래 진행됐던 종신연금보험인 백수(白壽)보험 가입자들의 집단소송. 당시 피고인 일부 보험사에 대해 원고 1심 승소 소식 이후 다수의 가입자들이 집단소송에 참여했지만 수년 뒤 결국 모두 패소했다. 당시 집단소송에 참여했던 투자자들은 연맹 홈페이지에 항의글을 남기기도 했다. 투자자 이모씨는 "100여만원 정도의 금액을 소송비로 냈지만 진행상황이나 패소했다는 내용을 (연맹으로부터) 연락받은 적이 없다. 실망이 컸고 괜히 생돈만 날렸다"고 하소연했다.

동양그룹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투자자 피해자들의 집단소송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공기관이 아닌 임의단체 '금융소비자원'이 동양 사태 피해자들을 모아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지만 과거 집단소송제 사례를 볼 때 피해자들의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란 지적이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소비자원은 지난 28일부터 다음 달 16일까지 동양 사태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1차 공동소송신청을 받고 있다. 2차 신청은 추후 받을 계획이다.

투자금액에 따라 1인당 최소 20만5000원에서 최대 45만원까지 소송신청 경비를 내야 한다. 또 항소시 1심 인지대 계산액의 1.5배 내지 2배를 추가로 내는 등 소송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비용부담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LIG건설 CP 피해자들의 소송 사례에서 보듯 15건의 소송 중 투자자들이 승소한 사례는 2건에 그쳤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나머지 13건 모두 증권사들이 승소했다. 그나마 투자자들이 이긴 2건 모두 항소에 들어간 상황이라 소송이 장기화되고 있다.

과거 집단소송을 주도했던 금융소비자연맹도 "동양그룹 CP, 회사채 불완전판매 피해자들은 법원에 공동소송을 먼저 제기할 경우 '불완전 판매' 입증이 어려워 승소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우선적으로 금감원에 피해 접수를 해 '불완전판매'를 인정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현재 동양 사태 피해자들 사이에서도 금소원의 집단소송 추진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다.

동양증권 부천지점에서 CP에 가입했다는 50대 투자자 김모씨는 "집단소송에 참가하면 금감원 분쟁조정을 받지 못한다. 집단소송에 먼저 나서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소송비용도 부담해야 하고, 승소하면 성공 보수도 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익명의 투자자는 "금소원에선 이번 사태를 사기 피해로 보고 있고 금감원에선 불완전판매라고 말한다"며 "나는 '사기'로 인정해주는 금소원 소송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집단소송에 신중히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양피해자대책 위원장인 이경섭 세무사는 "지금 필요한 것은 사기판매 증거를 수집하고 강한 개인 채권단을 구성해 기업을 압박하는 일이다"라며 "소송은 검찰 수사 추이를 보면서 해도 늦지 않다. 오히려 피해자들이 소송준비하면서 법률 소송비용을 감당하느라 2차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히 업계에선 금소원이 집단소송을 적극 추진하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담당하는 소비자단체에 포함되지 않은 금소원이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자 집단소송에 열을 올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조남희 금소원 대표는 "투자자 본인들이 자원해서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니 2차 피해는 말이 안된다"며 "금감원의 분쟁조정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라고 반박했다.

조 대표는 "금감원은 STX와 웅진 피해자들의 분쟁조정 신청에 대해선 피해액이 확정 안됐으니 분쟁조정이 안된다고 해놓고는 동양사태에는 나서서 무조건 조정해준다고 한다"며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일들을 국가기관이 하고 있다. 소비자 보호를 하는 것이 아닌, 동양증권과 금감원이 짜고 책임을 면피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김용훈 윤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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