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심리불속행(審理不續行) 사건이 최근 들어 급감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심리불속행은 대법원에 상고된 사건을 재판부가 더 이상 심리, 판단하지 않고 기각하는 것을 말한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심리불속행은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변호사 업계의 활성화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 때문에 법조계와 국회 일각에서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만큼 심리불속행 감소는 바람직한 변화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심리불속행 사건이 줄어들수록 대법원이 처리해야 할 사건은 상대적으로 늘어 법률심으로서의 기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소송유형별 최대 16%포인트 감소
대법원에 따르면 전체 상고심 사건 중 심리불속행 사건비율은 지난 2008년 평균 65.3%에서 지난해에는 52.7%로 12.6%나 줄었다. 이 가운데 가사사건의 경우 심리불속행 사건 비율이 87.7%, 행정소송은 70%가 넘는 심리불속행 비율을 기록했다.
소송유형별로 최근 5년 동안 심리불속행 비율이 가장 높은 해는 민사사건의 경우 2009년으로 65.8%, 가사사건은 2008년으로 87.7%, 행정사건은 2010년으로 71.7%였다. 형사소송은 심리불속행 대상에서 제외된다.
민사사건의 경우 지난해 기준 심리불속행 비율이 50.0%로 2008년에 비해 13.3%포인트, 가사사건과 행정사건은 각각 75.4%, 58.9%로 12.3%포인트, 11.7%포인트 감소했다. 소송유형별로 심리불속행 사건비율이 가장 높았던 해와 비교하면 최대 16%포인트나 줄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최근 5년 동안 심리불속행 사건 비율은 꾸준히 낮아졌다"면서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후 전원합의체 사건을 늘리고 심리불속행을 줄이는 등 대법원의 심리를 내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여기에다 그동안 심리불속행 제도의 폐지를 요구해 온 변호사 업계의 주장도 상당부분 수용한 측면이 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법조계 "환영할 만하지만 우려도"
그동안 법조계는 공판중심주의 측면에서 심리불속행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급심에서 충실한 재판을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대법원 심리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국민의 '재판을 받을 권리' 중에는 대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도 포함돼 있는데 심리불속행은 이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수임료와 관련한 변호사 업계의 말 못할 고민도 적지 않게 영향을 미쳤다는 게 법조계의 솔직한 입장이다. 재판을 시작한 뒤나 끝난 뒤에 수임료(착수금+성공보수)를 받는 변호사 업계 관행상 심리불속행으로 사건이 끝날 경우 이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심리불속행의 감소는 무작정 긍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리불속행이 줄어드는 만큼 대법원의 재판업무가 급증해 정작 중요한 사건에 집중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상고허가제' 등으로 연간 접수되는 8000여건 가운데 80~100건 정도만 연방대법원에서 다루지만 우리나라는 매년 1만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 실정이다.이와 관련, 대법원은 '상고허가제'와 대법원 재판연구관 증원을 주장하고 있고 법조계는 대법관을 증원해야 한다고 주장해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ohngbear@fnnews.com 장용진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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