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겨울을 맞아 난방용품 수요가 늘고 있는 가운데 전기난방기구를 사용하다 화재가 발생해 피해를 입었다면 최종적인 법적책임은 누가 지게 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화재가 소비자 과실이 아닌 제품의 결함으로 밝혀질 경우에는 제조물책임법에 따라 제조업체가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한다. 하지만 제조업체가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에 대해 법원은 인수한 제조업체가 종전 업체의 상호를 그대로 사용하더라도 거래처나 고용관계 승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현재의 회사에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어 주목된다.
■기존 업체 인수 회사에 배상 청구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의 H아파트에 세를 살고 있던 김모씨는 지난해 9월 함께 거주하던 황모씨가 선물로 받은 전기온찜질기에서 화재가 나는 바람에 집 전체와 이웃집까지 불에 타는 피해가 났다.
당시 H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와 화재계약을 맺고 있던 농협손해보험은 피해자들에게 1억9500여만원을 지급했다. 이후 피해 당사자인 김씨와 농협손보는 전기찜질기 제조사인 S사 대표 K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K씨는 "황씨가 찜질기를 선물받은 시기는 2010년 4월로 당시에는 자신이 제조한 상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며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냈다. K씨는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2011년 8월 폐업위기에 놓여있던 아들이 운영하던 S사를 인수했다. 이에 농협손보 등은 "설령 K씨가 온찜질기를 제조하지 않았더라도 S사 상호를 그대로 넘겨받은 만큼 이전 회사의 영업으로 인해 생긴 피해를 변제할 의무가 있다"며 맞소송을 냈다.
■영업 인수 안돼 책임 묻기 어려워
재판부는 우선 "상법상 영업양도가 이뤄졌는지 여부는 단지 어떠한 영업재산이 어느 정도로 이전돼 있는지가 아닌 종래의 영업조직이 유지돼 그 조직이 중요한 기능을 할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K씨는 아들로부터 인수대금 없이 허가 및 기계류만 양수했을 뿐 거래처, 고용관계 등을 인수받지 못해 새 업체로부터 부품을 납품받고 있다"며 K씨 아들의 영업양도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K씨는 기계류 등을 양수받은 다음 기존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전기찜질기를 만들었고, 사업자등록번호와 제품모델명도 전부 변경한 점 등을 종합해보면 K씨는 화재사고로 인한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법원 관계자는 "영업을 양수하면서 기존 사업자가 쓰던 상호를 계속 사용하면 영업상 채무까지 물려받지만 거래처 등 인적.물적 조직이 동일성을 갖지 못한 채 이전된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며 "이 사건의 경우 K씨 아들이 회사를 양도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어 책임을 물을 상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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