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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석방 모범수의 새해소망..천안개방교도소를 가다

어느 가석방 모범수의 새해소망..천안개방교도소를 가다
천안개방교도소는 석방이나 가석방을 앞둔 모범수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곳으로 다양한 사회복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재소자들이 벼베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 천안=장용진 이다해 기자】 갑오년 새해를 '특별한' 희망 속에 맞는 사람이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남들보다 나을 것도 없지만 그에게는 '희망'이라는 자산이 있다. 충남에 거주하는 서모씨(54)는 50대 중반의 나이로 '마이너스 인생'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지만 새해에는 새 희망을 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7년 만의 자유인…여건은 암담

서씨는 사실 완전한 자유인은 아니다. 모범수인 그는 8년의 형기 중 7년 남짓을 채우고 지난해 12월 24일 천안개방교도소 문을 나섰다. 서씨는 남은 형기를 '전자발찌'를 차고 채워야 한다. 가석방 조건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활동반경이 일일이 체크되며 가서는 안될 곳도 있다. 15시간마다 발찌를 충전해야 하고 혹여 배터리가 방전돼 전자발찌가 꺼지기라도 하면 크게 경을 치게 된다. 당연히 멀리 갈 수도 없고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당장 직업을 구해야 하지만 전자발찌 탓에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그의 원래 직업은 화물차 운전이지만 당분간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서씨는 "아들 딸과 함께 살기 위해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아야 한다"며 "진심을 다해 성실한 모습을 보인다면 꼭 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사실 서씨는 꼭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 돌아가서 자식들에게 용서를 빌어 이해를 구하고 떳떳한 아빠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7년 전 그는 부부싸움 도중 홧김에 주먹을 휘둘렀고 정신을 차렸을 때 아내가 숨져 있었다. 아이들에게서 엄마를 빼앗은 것이다.

그러고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재판을 받을 때 아이들이 찾아왔지만 너무도 괴로워 만나지 못했다. 어느 새 성년이 된 아들 딸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싶은 것이 그의 마음이다. 그러기 위해선 빈털터리로 나설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나쁜 놈 용서해 달라고 탄원서까지 내준 장모님이 3년 전 돌아가셨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꼭 용서를 빌고 싶습니다"라며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어느 가석방 모범수의 새해소망..천안개방교도소를 가다
본지 장용진 법조팀장(뒷줄 왼쪽)과 이다해 기자가 천안개방교도소에서 재소자 서모씨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회적 편견 성실함으로 극복"

지난해 12월 23일 천안개방교도소에서 만난 서씨. 출소를 24시간 앞두고 그는 "말년 병장 때보다 시간이 더 느리게 간다"며 미소를 보였다. 서씨의 미소 끝에는 마냥 기쁠 수만은 없는 복잡한 심경이 묻어났다.

"출소가 가까워질수록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아직 직장도 확정되지 않았고 벌어놓은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세상의 따가운 시선과 맞닥뜨릴 생각을 하니 두려운 마음이 큰 게 사실입니다."

서씨는 출소를 앞두고 다녀온 귀휴(歸休) 기간에 세상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직장을 알아보기 위해 지인들을 찾아다녔다는 그는 "세상의 시선이 생각보다 따가웠다"고 토로했다. 몇몇 직장에서는 그가 복역한 사실을 고백하자 얼굴빛이 달라졌고, 심지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서씨는 "성실하게 살아가면 이런 편견은 바꿀 수 있으리라 믿는다"면서 "자식에게 떳떳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라도 꼭 취업에 성공해 기반을 닦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갈 길 멀지만 "그래도 희망"

서씨는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할 준비가 돼있다"며 "7년의 수감생활을 모범수로 견뎌낸 것처럼 나가서도 열심히 생활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7년 전 마지막으로 본 아이들을 찾을 계획이라는 서씨는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 새해를 맞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행복이며 힘이 난다"고 말했다.

서씨는 출소 뒤 두 곳의 회사에서 면접을 봤다. 한 곳은 영농회사고 또 한 곳은 자동차부품 생산 공장이다. 어떤 곳에서 그가 일을 하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두 곳 다 얼마 전 천안개방교도소에서 열린 취업행사를 통해 연락이 닿았다. 급여는 최저임금을 조금 웃도는 수준. 여건이 좋지 않지만 서씨에게는 이 두 곳의 일자리가 희망을 찾아가는 '열쇠'와 같다. 취업이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그는 악착같이 돈을 모아 가석방 기간이 끝날 무렵 화물차를 구입하는 것부터 제2의 인생을 시작할 계획이다.
교도소에 있는 동안 모아둔 돈과 합치면 중고 화물차는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다음엔 가족들이 모여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그래서 지금 그에게 일자리는 무엇보다 소중한 희망의 끈이다.

ohngbear@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