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 노예 장애인
일자리를 준다는 말에 낯선 이를 따라나섰다가 외딴 섬으로 팔려가 수년간 강제노역을 해온 장애인들이 경찰에 극적으로 구출됐다.
6일 서울 구로경찰서에 따르면 지적장애가 있지만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성실하게 일해온 채모(48)씨는 더 나은 일자리가 있다는 말에 속아 지난 2008년 전라남도 목포의 직업소개소 직원 고모(70)씨를 따라 신안군의 한 외딴 섬 염전으로 가게 됐다.
이때만 해도 채씨는 괜찮은 일자리를 구했다고 생각했다. 노예처럼 부려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염전 운영자인 홍모(48)씨는 채씨를 하루 5시간도 채 재우지 않으면서 소금 생산은 물론 벼농사, 신축건물 공사 잡일, 각종 집안일을 시키면서도 월급 한 푼 주지 않았다. 제대로 된 항의조차 할 수 없었던 채씨는 수년간 노예처럼 일만 해야 했다.
시각장애 5급인 김모(40)씨도 2012년 7월부터 같은 염전에서 채씨와 함께 일했다.
2000년에 과도한 카드빚을 지게 되자 김씨는 가족에 짐이 되기 싫어 가출해 10여 년 공사장을 전전하며 서울 영등포역 근처에서 노숙생활을 해오다 꼬임에 빠졌다. 2012년 7월 노숙자 무료급식소에서 만난 직업소개업자 이모(63)씨가 좋은 일자리를 구해주겠다고 하자 그 말을 믿고 이씨를 따라갔다가 채씨와 같은 처지가 됐다.
고된 염전 노동과 폭행에 지친 김씨는 채씨와 함께 섬에서 빠져나오려고 세 차례 시도했지만, 매번 발각돼 매질을 당해야 했다.
이들은 홍씨로부터 심한 협박을 받고 겁에 질려 더 이상의 탈출 시도는 포기했다.
염전에서 일하는 다른 지역 출신 근로자들이 워낙 많은 탓에 섬에서 김씨와 채씨를 이상하게 여기는 주민조차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씨가 홍씨의 감시를 피해 '섬에 팔려와 도망갈 수 없으니 구출해달라'는 편지를 어머니(66)에게 보냈고 신고를 받은 경찰이 탐문에 나서고서야 이들은 노예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확한 주소를 특정할 수 없었던 경찰은 소금 구매업자로 위장해 섬 곳곳을 탐문수사한 끝에 지난달 28일 염전에서 일하던 김씨와 채씨를 무사히 구출할 수 있었다. 김씨는 1년 6개월, 채씨는 무려 5년 2개월 만에 자유의 몸이 됐다.
김씨는 어머니와 헤어진 지 14년 만에 상봉해 함께 귀가했고 채씨는 가족과 지낼 형편이 못돼 영등포 소재 쉼터에 자리를 잡았다.
경찰은 이들을 유인한 직업소개소 직원인 고씨와 홍씨를 영리약취·유인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자격이 없는데도 불법으로 일자리를 알선해온 고씨와 이씨는 홍씨로부터 각각 수십만원의 수수료로 받아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먹여주고 재워주겠다'는 말에 속아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강제로 일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관계기관에 합동 전수조사를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onnews@fnnews.com 온라인뉴스팀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