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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고위공무원 1100명에 비화폰.. 재갈 물리기?

[단독] 고위공무원 1100명에 비화폰.. 재갈 물리기?

정부가 중앙행정기관 전 부처 국장급 이상 고위공무원을 대상으로 도.감청 방지 비화(秘話)폰 지급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정보원이 중심이 된 이번 업무용폰 확대 및 비화폰 교체사업은 보안 강화라는 측면도 있지만 국가권력의 과도한 감시로 공직사회에 재갈을 물릴 수 있다는 점에서 언로통제의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12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국정원과 안전행정부는 기획재정부, 안행부, 외교부, 통일부 등 전 부처의 고위공무원에게 업무용 비화폰을 지급하기 위해 관련 대상자에 대한 수요조사를 진행 중이다.

대상자는 중앙부처 국장급 이상 고위공무원 1100여명이다. 이들에겐 이달 말을 전후해 업무용 비화폰이 배포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정부의 업무용폰 지급대상은 안행부의 경우 1급 공무원 이상, 일반 부처는 대개 장관급 이상으로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대상이 국장급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문제의 비화폰은 일반 휴대폰과 달리 도.감청 방지를 위한 특수한 암호화키가 장착돼 있다. 정부의 비화폰 지급은 최근 롯데.KB국민카드 등 카드정보 유출, KT 정보유출 등 각종 정보유출에 대부분의 공무원이 포함돼 있는 데다 스마트폰에 대한 해킹 방지 및 보안의식 강화라는 점에서 추진되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비화폰이라고 해서 감청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오히려 개인에겐 독이 될 수도 있다. 비화폰에 걸려있는 암호는 암호해독키, 일명 마스터키를 통해 얼마든지 풀어낼 수 있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마스터키는 국가가 보유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국가기관 역시 이에 대한 엄격한 제약이 가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직사회는 비화폰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무원에 대한 과도한 사생활 침해, 지나친 업무통제, 언로봉쇄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또 공직자가 비화폰을 소지한다 해도 도.감청 방지라는 당초의 목적에 부합하려면 전화 상대방 역시 비화폰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나 부처 장관급 이상 또는 국방.외교.통일 등 안보관련 부처들이 아닌 전 부처 국장급 이상에 비화폰을 지급하는 건 공직사회를 경직시키는 과도한 행정력 남용이 될 수 있다.

일선 부처의 한 고위공무원은 "공무원 개인의 사생활은 어떻게 보장하느냐"면서 "과도한 정보통제, 사생활 침해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한 전직 공무원은 "결국 국정원이 (공무원들의 생활을) 다 들여다보겠다는 것 아니냐"면서 최근 일련의 사태로 불거진 국정원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보안전문가들은 비화폰에 대한 엄격한 정부 내 통제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감청의 경우 통신비밀보호법상 국가안보상 상당한 위험이 예상되거나 범죄 수사의 경우 법원의 허락을 받거나 긴급히 감청해야 할 경우 36시간 내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과거 비화폰을 개발한 경험이 있는 포스텍(포항공대) 이필중 교수는 "비화폰은 좋은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국가기밀이 새나가는 걸 방지한다는 측면이 있으나 잘못 사용되지 않도록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공익적 목적 간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