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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창조하는 과학기술 리더들] 김흥남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장 “배무게 10분의 1로 줄인 선박통신기술, 국제표준 됐죠”

[미래 창조하는 과학기술 리더들] 김흥남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장 “배무게 10분의 1로 줄인 선박통신기술, 국제표준 됐죠”
김흥남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이 21일 대전 가장로 ETRI 본원에서 2017년까지 창업 100개, 기술지원 500개 업체를 통한 1만개 일자리 창출, 매출 1조원을 골자로 한 '백만조(百.萬.兆)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2008년께 최문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김흥남 임베디드소프트웨어 연구단장(현 ETRI 원장)에게 아이디어 하나를 냈다. 최 장관은 "조선이나 자동차에 임베디드를 적용하면 어떻겠는가"라고 제안했다. 김 단장은 눈이 번쩍 뜨였다. 김 단장은 고민 끝에 울산으로 향했다. 승용차로 오전 4시부터 운전해 오전 7시에 울산에 도착했다. 울산 현대중공업을 찾아갔다. 현대중공업 직원들은 처음엔 의아해했다. "선박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시켜 고부가 '스마트 선박'을 만들겠다"는 취지를 설명한 뒤에야 신뢰를 얻었다.

【 대덕(대전)=양형욱 김혜민 기자】 일단 조선소에서 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선박을 살펴봤다. 선박은 거대한 빌딩과 같았다. 미로처럼 복잡한 선박 내부엔 철판 직경 30㎝ 구멍을 관통하는 구리선 수백 가닥이 눈에 들어왔다. 이유가 궁금해졌다. 이는 온도나 가스누출 등을 감지하는 센서를 연결해 제어하는 선이었다. LNG선 곳곳에는 3000개의 센서가 깔려있다. 선박 내부는 곳곳에 철판을 뚫어 센서를 연결하는 전선을 설치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었다. 공간 효율도 떨어졌다.

현대중공업은 전파간섭 때문에 무선도 시도하지 못했다. 전파간섭을 극복할 수 있는 유무선 기술을 개발하기로 마음 먹었다. 2008년 국책과제로 '선박통신기술(SAN)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후 수없이 울산을 오갔다. 울산 조선소에서 날을 새우는 일도 많았다.

그렇게 SAN이 탄생했다. SAN을 적용한 선박은 무게가 10분의 1로 줄었다. 선주가 앉은 자리에서 오대양에 떠있는 선박의 위치와 상태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해적이 선박을 납치하면 선주가 선박의 전원을 차단할 수도 있다. 현대중공업은 스마트 선박을 앞세워 중국에 뺏겼던 수주물량을 회복했다. SAN은 현재 국제표준기술이 됐다.

김흥남 ETRI 원장의 스마트선박 기술 개발 일화다. '창조경제'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7년 전에 김 원장은 선박과 ICT를 융합해 세계 최초로 스마트선박을 탄생시킨 것이다.

김 원장은 "현대중공업은 세계적인 선주회사들에 120여척의 스마트선박을 수출하는 성과를 올렸다"면서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줬던 우리 조선사업이 스마트선박을 통해 재도약하는 발판도 마련했다"고 역설했다.

김 원장은 지난 2009년 ETRI 원장에 오른 후 대형 과제 발굴 수행에 역점을 뒀다. 지난 21일 대전 가장로 ETRI 본원에서 "지난 1980년대 한국형 전전자교환기(TDX)를 개발할 때 혈서를 쓰고, 시멘트 바닥에서 밤샘 연구를 하다가 목숨을 잃는 열정을 쏟았던 ETRI 선배들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김 원장을 만나 ICT 연구개발 현안과 발전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 2009년 취임한 후 성과나 활동은.

▲지난 2009년에 취임하면서 세 가지 약속을 했다. 메가 프로젝트, 기술 사업화, 꿈의 선진 연구일터 등이 그것이다. 당시 연구원에서는 10억원이나 20억원 수준의 중소규모 과제가 대부분이었다. 대형 성과를 만들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 먼저 대형 과제를 기획하고 수행하자고 목표를 잡았다. 그 일환으로 기가 코리아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 사업은 오는 2020년까지 총 5500억원을 투자하는 대형 사업이다. 매년 300억원씩 투입될 예정이다. 또한 ETRI가 연구개발해 이전한 기술의 완성도와 상용화 성공률을 제고하기 위한 '상용화 현장지원제도'도 도입.운영하고 있다. 이외에 세계 최초 4세대 이동통신시스템 롱텀에볼루션-어드밴스트(LTE-A) 기술 개발, 스마트선박 기술 개발, 세계 최고 수준의 한.영 자동통역기술 개발 등 연구성과도 많이 있었다.

―그간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는.

▲특히 지난 4년 동안 원장으로 재임하면서 가장 기뻤던 기억은 ETRI가 전 세계 237개 기관 중 2년 연속으로 세계 1위를 차지한 일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이겼다는 것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양적인 지수가 700건으로 2배 이상 높았다. 그러나 질적인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천재들이 만들어낸 특허처럼 한 건을 하더라도 질적인 특허를 개발하기 위해 캠페인을 하고 있다. 1·1·1캠페인이다. 이는 1명의 연구원이 1년 동안에 임팩트 있는 1건의 연구를 해내자는 의미다.

―올해 운영 전략은.

△올해 업무추진 방향으로는 '성과경영' '특허경영' '인재경영' 등이다. 그 일환으로 과제 평균 규모를 2배로 늘릴 예정이다. 또한 안정적인 예산을 2배로 확대하겠다. 특허기술료 수입도 2배 증대하는 게 목표다. 3대 더블업(Double up) 과제도 지속적으로 실천해 나가도록 하겠다. 이를 위해 변화와 혁신 전략을 세웠다. 먼저 창조형 연구개발 프로세스를 강화하겠다. 안정사업과 민간수탁 중심으로 구조를 개선하고 과제 중대형화 등을 통해 안정예산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 중장기 글로벌 핵심인재 계획을 수립해 매년 60명의 신규 인력도 충원하겠다. 개방형 생태계 조성을 선도해 나가겠다. 연구소 간 칸막이를 없애기 위해 연구소 간 협력형 톱다운 사업기획 방식 도입을 검토.추진하겠다. 중소.중견기업 육성 지원을 통한 성과 확산에 노력하겠다.

―창조경제 측면에서 ETRI의 역할은.

▲창조경제 핵심은 일자리 창출이다. ETRI는 이를 위해 백만조(百.萬.兆)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즉, 2017년까지 창업 100개, 기술지원 500개 업체를 통한 1만개 일자리 창출, 매출 1조원을 목표로 중소기업 육성을 적극 돕겠다는 취지다. 이것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연구 분위기 속에서 연구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2007년 국민소득 2만달러에 진입한 이후 정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 선진국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서 3만달러로 도약하는 데 평균 8~9년이 소요됐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창조경제 추진방향은 일자리 창출을 포용해 3만달러 대도약을 위한 강한 모티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ETRI가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100억원을 투자받았다. 이는 창조경제 IP금융의 모범적 사례로 여겨지는데.

▲창조경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가 성장동력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무형자산인 아이디어로 돈 벌자가 창조경제의 핵심이다. 결국 대표적인 것은 특허다. 그간 유형자산으로 수출을 해왔으나 앞으로는 특허를 수출해야 한다. 그 일환으로 라이선싱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또한 토털 패키지 형태로 돈을 버는 방법도 있다. 예컨대 LTE-A와 관련 10개 특허를 패키징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산업은행의 100억원 투자는 무형가치를 눈에 보이는 가치화(돈) 했다는 측면에서 좋은 사례다.

―지난 30여년간 ICT분야에 종사하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동사무소 행정 전산화 프로젝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것이 전자정부의 초석이 됐다. 지금도 동사무소(동주민센터)에 가서 등초본을 뗄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 당시, 밤새워가면서 작업했던 기억이 난다. 이 프로젝트는 주민 2만명의 데이터를 하드디스크에 넣어 온라인으로 정리하는 게 골자였다. 전산실에서 연일 밤샘작업을 했다. 동사무소 프로젝트를 하는 도중에 아내도 만났다.

―이름에 얽힌 사연이 있다고 들었는데.

▲선친이 '흥남'이란 이름을 지어줬다. 사연은 이렇다. 선친은 일제강점기 때 태평양전쟁에 징용되는 영장을 받았다. 전쟁에서 못 돌아올 것을 생각하고 족적을 남기기로 결심했다. 두만강에서 본가 대구까지 3500리를 걸어내려오기로 한 것이다. 도보여행 중 흥남부두에 들렀다. 당시 세계 최대규모 흥남 질소비료공장과 마주하게 됐다. 공장의 규모로부터 강렬한 인상을 받은 선친은 결심을 했다. 사지로 끌려가는 중에 내가 운이 좋아 살아돌아오고, 또 운이 좋아 결혼을 하고, 더욱 운이 좋아 장남을 낳는다면 공장장이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선친은 운이 좋아 징용에서 살아돌아왔고, 장남을 낳아 이름을 흥남이라고 지었다. 선친의 유언처럼 흥남비료공장의 공장장이 되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지식공장' 공장장이 되어 보람을 느낀다.

■김흥남 ETRI 원장은…

김흥남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은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연구원들이 현장을 중시하는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 원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볼 주립대에서 전산학 석사학위를,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8년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로언경영대학원에서 전략과 혁신 전문가 과정을 1년간 수료했다.

지난 1983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시스템공학연구소 근무를 시작으로 ETRI 내장형SW연구팀 팀장, 임베디드SW기술센터 센터장, 혁신위원회 위원장, 임베디드SW연구단 단장을 지냈다. 김 원장은 정보통신부 장관 표창을 비롯해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08년 ETRI 기획본부 본부장 역할을 수행하다 1년간 미국 MIT 전자연구실험실(RLE) 초빙연구원으로 근무했다. 2009년 ETRI 스마트 그리드 기획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았으며 같은 해 ETRI 원장에 취임했다. 2012년 연임에 성공한 김 원장은 지식재산 확보를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에 큰 공로를 인정받아 생산성 경영자 대상을 수상, 성공적인 경영 행보를 보였다. 당시 ETRI는 미국 등록특허 기준 2012년도 특허종합평가에서 전 세계 237개 연구소.대학.정부기관을 제치고 2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등 지식재산 확보를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외활동으로는 한국정보과학회 부회장과 과학기술출연기관장협의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 대한임베디드공학회 회장, 한국통신학회 부회장, 한국지식재산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대한민국을 IT 강국으로 만든 1등 공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전신인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시절을 지나 올해로 설립 38주년을 맞았다. ETRI는 그동안 전전자식교환기(TDX), 메모리 반도체(DRAM),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지상파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롱텀에볼루션-어드밴스트(LTE-A)시스템, 스마트 선박 기술(SAN) 등을 개발해 왔다. 이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는 2012년 기준으로 약 170조원에 달한다.


전체 공공기관 특허출원의 40%를 담당하는 ETRI는 특허전문지인 IP 투데이가 실시한 미국특허 종합평가에서 2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지난해에는 정부출연연구원 최초로 '에트리홀딩스㈜'를 설립해 연구개발한 성과를 사업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또 '중소기업 상용화 현장지원제'를 운영하며 연구원 5명 중 1명꼴로 기업에 파견하는 등 중소기업 지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hwyang@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