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중개인과 결탁해 국가 방위력 개선사업 관련 2·3급 군사비밀을 무차별적으로 국내외로 빼돌린 현역 장교와 군 출신 방산업체 임원들이 검찰에 덜미를 잡혔다. 유출된 기밀 가운데는 전파방해를 무력화시키는 '항재밍(Anti-jamming)' 위치정보시스템과 유도탄 성능기준, 차기호위함 (FFX) 전력 추진 관련 기밀 등 방위력 개선사업의 주요 기밀이 다수 포함됐다.
이들은 무기중개인으로부터 수년간에 걸쳐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고 이권관계를 유지하면서 군사 기밀을 통째로 복사해 넘긴 것으로 검찰조사결과 드러났다.
■검찰,현역장교 등 7명 기소·5명 수사중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이현철)와 국방부 검찰단은 15일 방위력 개선사업 관련 31건의 군사기밀을 빼내 국내외 25개 업체에 제공한 혐의(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형법상 뇌물공여 등)로 무기중개인인 방위산업체 K사 김모 이사(51) 및 김 이사와 공모해 3급 기밀 5건을 수집·누설한 해군대위 출신 K사 염모 부장(41)을 각각 구속 기소했다. 또 이들에게 군사기밀을 제공한 공군중령 출신 K사 정모 컨설턴트(59), 방위산업체 H사 신모 부장(48)에 대해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
이 사건과 관련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현역 군인을 수사한 국방부 검찰단은 김 이사에게 국지공역감시체계 등 3급 군사기밀을 넘기고 현금 500만원과 향응을 제공받은 공군본부 기획전력참모부 박모 중령(46), 소형무장헬기 탐색개발 결과보고를 제공하고 유흥주점에서 두차례 접대를 받은 방위사업청 국책사업단 조모 소령(45)을 각각 구속 기소했다.
방사청의 최모 대령(47)은 비행실습용훈련기 구매계획 등을 자필로 메모해 넘기고 그 대가로 250만원 상당의 악기(기타)와 유흥주점 접대를 두차례 받은 혐의로 군 수사기관에 형사입건됐다.
검찰은 이들 외에 김 이사가 방위사업청과 해외로 출국할 때 신분을 위장할 수 있도록 여권 등을 제공해준 혐의(여권법 위반)로 쌍둥이 형 김모씨(51)를 약식기소했다.
검찰은 아울러 관련 민간인 3명을,군 검찰은 최 대령과 방산업체 직원 1명 등 2명을 대상으로 각각 추가 수사한 뒤 기소할 방침이다.
■뇌물·향응 받고 군사기밀 통째 유출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현역 장교와 무기중개인의 도덕적 해이는 도를 넘어섰다.
수년간 김 이사로부터 뇌물과 향응을 제공받은 군 장교들은 방위력 개선사업 비밀문서를 통째로 넘겨주는가 하면 휴대전화로 이를 촬영해 카카오톡과 이메일 등으로 제공하는 대범함도 보였다. 이들은 김 이사가 고용한 젊은 여직원들과 저녁식사 자리를 갖고 등산, 스키모임에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김 이사는 K사 이사직 외에도 해외방산업체 H사의 컨설턴트를 맡아 10년간 무기중개업을 해오는 과정에서 군 장교들과 친분을 쌓아왔다.
김 이사는 군 기밀을 빼내는 과정에서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쌍둥이 형의 여권과 인적사항을 활용해 해외로 출국하거나 군 관련 시설에 드나들기도 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이렇게 빼낸 기밀은 이메일을 통해 21개 외국업체와 4개 국내업체에 뿌려졌다.
검찰과 군은 기밀을 넘겨받은 국내업체에 대해서는 압수수색을 통해 원본을 회수하는 한편 해외업체에는 자진삭제를 권고했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사업참여 제한 등의 제재를 하기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비밀의 일부를 메모 형태로 유출하던 종래의 수법을 뛰어넘어 아예 통째로 복사해 직접 전달한 초유의 사건"이라며 "추가적인 기밀 누설 여부와 국내외 방산업체 관련자들에 대해 계속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 권병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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