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우 한국천문연구원장이 지난 8일 대전 대덕대로 천문연구원 집무실에서 천문분야의 발전방안과 기관 경영비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국내 천문 연구분야가 추격형에서 벗어나 개척연구를 할 수 있는 적기를 맞았다. 10년 안에 세계적인 연구그룹이 3개 이상 탄생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천문분야 대표 연구기관인 한국천문연구원을 이끌고 있는 한인우 원장의 일성이다. 1990년 천문연구원에 첫발을 들인 한 원장은 국내 망원경 기술 선진화를 이룬 숨은 주역이다. 1m, 60㎝급 광학망원경을 개발하고 기술을 이전하는 등 광학천문학 연구에 필수적인 정밀 장비 발전에 기여했으며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장관상도 받았다.
【 대덕(대전)=김혜민 기자】 국내 천문연구의 비약적인 성장을 지켜본 산 증인이기도 한 그는 "천문분야 연구가 양적인 면에서는 세계 수준에 도달했지만 네이처나 사이언스에 주저자로 된 논문 한 편을 실은 적이 없다"며 "'실적 내기용' 논문은 지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거대마젤란망원경(GMT)과 같은 선진 연구설비를 기반으로 연구자가 10년 이상 꾸준히 연구에 전념할 수있도록 안정적 환경을 만들겠다"면서 "임기를 마친 후에도 시스템이 지속될 수 있도록 원장으로서의 재량을 최대한 발휘하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인재가 곧 경쟁력인 만큼 해외 석학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등 인재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갈릴레오처럼 한국인 천문학자의 업적이 세계에 소개되길 희망한다"고 말하는 한 원장을 지난 8일 만나 천문분야의 발전방안과 과학기술계의 현안에 대한 혜안을 들어보았다.
―다른 출연연과 차별화되는 천문연구원만의 정체성을 들자면.
▲국내 유일의 천문우주과학을 연구하는 연구기관으로 과학적 원리를 규명하는 순수 기초연구와 국가와 사회에서 요구하는 공공적인 연구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천문우주과학은 미래성장동력을 위한 새로운 지식 창출을 위한 연구와 지구·태양권, 우리 태양계는 물론 별, 은하, 우주, 그리고 생명과 그 기원에 대해 연구하는 다학제 간 학문 분야로 과학기술과 지식을 통합하는 융·복합 학문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천문연은 국립천문대를 시작으로 국내 천문연구를 40년간 선도해왔다. 그간의 업적을 꼽자면.
▲우선 2008년 국제공동 세계 최대급 대형 광학망원경 개발 사업에 착수한 것을 들 수 있다. GMT는 세계 최대 직경인 25m 광학망원경으로 허블망원경보다 10배 더 선명한 영상을 제공할 수 있다. 이 망원경은 현재 운영되고 있는 가장 큰 지상 천체망원경보다 훨씬 더 어두운 천체를 연구할 수 있다.
다음으로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을 갖췄다는 점이다. KVN은 서울(연세대), 울산(울산대), 제주(탐라대)에 각각 설치된 전파망원경을 동시 가동해 지름 500㎞급 초대형 안테나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최첨단 관측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천체의 정밀위치 측정, 우주 초미세 구조 연구는 물론 한반도의 미세 지각변동을 검출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아울러 일본, 중국의 전파망원경과 연계해 '동아시아우주전파관측망(EAVN)'이 완료되면 5000㎞급 안테나 구경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한 세계적인 연구성과도 기대할 수 있다.
2009년 천문연이 2개의 태양을 가진 외계행성을 발견하고 논문으로 발표했으며 관련분야 최다 인용을 기록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외계행성 찾기 프로젝트를 수행한 결과 2개의 별로 이뤄진 쌍성 주위를 공전하는 외계행성계를 발견, 2009년 2월 미국 천문학회지에 게재했다. 이는 2010년 미국천문학회지에서 지난 2년간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5편 중 하나로 선정됐다.
―향후 천문연이 중점을 두고 연구하거나 지원할 분야는.
▲국가적으로 추격형 성장에서 선도형 성장으로 패러다임을 변화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확보를 위한 기초연구와 융합연구가 필수조건이다. 이를 반영해 대표적인 기초연구분야인 천문우주과학분야의 융합연구를 강화하고자 한다.
중대형 망원경을 이용한 우주탄생과 진화연구를 통해 세계적 연구성과 창출을 위한 융합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외계행성탐색시스템(KMTNet) 구축이 올해 완료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지구형 외계행성 탐색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며 태양활동 및 근지구 우주환경 연구를 통한 국제선도그룹을 육성할 방침이다.
아울러 재난대비 안전 확보를 위한 국가·사회적 요구에 대응하고자 우주재난에 대비하는 공공인프라형 사업인 우주감시기술개발사업을 확대한다. 점점 증가하고 있는 우주물체의 위험으로부터 국가 우주자산과 국가안보 및 사회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천문우주과학연구·기술을 활용해 우주감시 핵심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다.
―최근 대표적 연구개발과 지원성과는.
▲적외선 우주관측 성공이 대표적이다. 일본, 미국과 공동으로 개발한 적외선 우주관측카메라 시스템(CIBER)이 미국항공우주국(NASA) 로켓에 탑재되어 적외선 우주관측에 성공했다. CIBER는 천문연이 개발한 근적외선 카메라(KASINICS)를 기반으로 구축됐다.
이는 나사와 국제협력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적 역량을 입증한 성과로 향후 지구관측, 국방 및 산업 등 다양한 적외선 분야에 활용 가능하다. 천문연은 이들과 함께 빅뱅 이후 우주 태초의 빛을 추적하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또 '블랙홀 제트의 분출 시작 순간'을 세계 최초로 관측했다. 블랙홀 이중성인 '백조자리 X―3'을 관측해 블랙홀 제트의 발생에 관한 다파장 이론을 증명한 것이다. 관련 학계의 오래된 숙제 중 하나를 세계 최초로 풀었다는 데 의미가 컸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로 별 탄생의 최신이론을 관측으로 증명하면서 기존에 알려진 별탄생 과정을 정면으로 뒤집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별 탄생 원리를 밝히는 여러 가지 연구에 중요한 실마리가 될 전망이다.
지구 방사선벨트 생성원리도 최초로 발견했다. 반 알렌 벨트(Van―Allen Belt)로 알려진 지구 방사선 벨트의 생성원리를 처음으로 규명해 네이처에 게재했다. 이에 위성의 안정적 운용과 지구환경 변화 연구 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천문연만의 융합연구 전략이 있다면.
▲최근 융복합연구의 중요성과 오픈이노베이션이 화두다. 관련 학문과의 융·복합도 그렇지만 다른 학문과의 융·복합도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천문학은 자연과학 학문과의 융합은 물론 기계·전자공학과도 융합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전파망원경 안테나, 수신기는 전파공학의 한 분야와 융합해야 하고, 그렇게 하고 있다. 천문연은 지난 10여년 전부터 한국전자파학회와 함께 마이크로파 및 밀리미터파 워크숍을 매년 해오고 있고, 천문연이 이 분야를 주도하고 있다. 앞으로 이공계 분야는 물론 인문학과의 융합도 고려해 보겠다. 현재 융합과제로 우주탄생과 진화 규명을 위해 전통적인 천문학 방법론에서 벗어나 다학제·다파장 융합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에 이론 물리학 및 입자물리학의 모델과 실험을 다양한 관측방법을 통해 검증하는 기초과학연구원(IBS)과의 융합 연구를 계획 중이다. 또 출연연 간 천문학―물리학―빅데이터 등의 시너지 효과의 최대 창출을 위해 창의적 융합연구를 확대하려고 한다. 중대형 망원경을 통해 발생하는 거대 자료처리의 능률을 제고하기 위해 다양한 이론적인 모델 검증 및 자료처리 알고리즘 개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향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및 국가수리과학연구소(NIMS)와 협력할 것이다.
―출연연의 기술사업화가 화두인데.
▲정부에서는 연구원의 기술개발결과를 중소기업에 기술이전해 우리 경제를 살리는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 연구원에서도 과학연구와 함께 광학, 전파, 우주과학 분야에서 여러 가지 천문학 관측기기를 개발하고 있고, 그 결과를 중소기업에 이전할 계획이다. 천문연에서는 지난해 중소기업협력센터를 선임부장 직속 부서로 설치해 중소기업 기술협력을 위해 과제를 발굴, 수행하고 있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출연연 중소기업 연구개발(R&D) 전진기지화 정책에 호응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중소기업부설연구소를 유치하고 중소기업과 공동 기술개발을 진행했으며 연구장비를 공동화했다. 그 결과 입주 중소기업이 천문연 연구장비를 활용한 광학제품을 개발해 6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성과도 거뒀다. 현재 중소기업과 함께 1m급 중형망원경 기계부 및 제어시스템 개발에 성공, 기술이전 단계에 들어갔다. 또한 중소기업 기술멘토링 사업과 은퇴과학자가 참여하는 중소 애로기술 해결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공계 우대에도 불구하고 이공계 기피현상은 여전히 사회적 이슈인데.
▲대학에서 이공계를 전공하는 학생수 자체는 적지 않다. 따라서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에 과학기술 교육의 혁신이 필요하다. 교수들이 연구개발 에너지를 쏟고 성과를 내는 것도 좋지만 양질의 학생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교육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학부과정에서 어떤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졸업 후 학생의 역량차가 클 것이라고 예상한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서는 교육전담교수를 채용한다고 들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향후 대학이 우수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혁신을 해야할 것이다. 아울러 순수 과학뿐 아니라 정보통신기술(ICT)과 같은 응용 과학 분야를 포함해 과학기술계 종사자에 대한 대우가 충분하지 못했다. 소프트웨어(SW)산업의 경우 엔지니어를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팽배해 처우개선의 목소리가 크다. 단순히 급여 개선이 아닌 사회적 인식도 변해야 한다.
■약력 △56세 △충남 논산 △서울대 물리학 학사 △미국 피츠버그대 천문학 박사 △보현산천문대건설팀장 △위치천문연구실장 △응용천문연구부장 △보현산천문대장 △광학천문연구부장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전임교수 △천문연구원 연구발전협의회 부회장 △천문연구원 연구발전협의회 회장
■수상 △2007년 과학기술부장관 표창
bbrex@fnnews.com
한국천문연구원은 지난 2009년부터 미국, 호주의 주요 공동 개발 기관과 함께 거대 마젤란 망원경(GMT·Giant Magellan Telescope)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초 국제 입찰 과정을 통해 제작사를 선정하는 과정에 돌입했으며 2020년께 망원경이 설치될 예정인 칠레의 라스 캄파나스 산 정상에는 현재 천문대 설치를 위한 평탄 작업이 완료된 상태다. 거대 마젤란 망원경의 모형도.
■한국천문연구원은
【 대덕(대전)=김혜민 기자】 1만원권의 뒷면에는 혼천의, 보현산 천문대 광학망원경, 세계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석각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그려져 있다. 이렇듯 무심코 보아 넘기는 1만원권에 한국 천문학의 역사가 담겨있을 정도로 천문학은 우리 가까이에 있으며 그 중심에는 한국천문연구원이 있다.
1974년 9월 국립천문대로 설립된 이후 천문연은 국내 천문연구를 주도해왔다. 1978년 백산천문대의 준공으로 한국 현대천문학이 시작됐으며 1996년 보현산천문대 건립으로 미래천문학으로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2008년에 구축된 한국우주전파관측망은 우리나라 천문학의 현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성과다. 지름 21m인 전파망원경 3기를 동시에 가동하면 지름 500㎞급 초대형 안테나 효과를 낼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천문·측지연구 겸용 인프라인 셈이다. 이와 함께 2009년부터 미국·호주와 공동개발 중인 거대마젤란 망원경은 천문학의 미래다. 직경 25m로, 2019년 칠레 안데스 산맥의 라스 캄파나스 천문대에 설치가 완료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망원경을 보유하게 된다. 이로써 현존하는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없었던 미지의 우주공간을 탐험할 뿐 아니라 노벨상급 연구 성과도 기대해볼 수 있게 됐다.
천문연은 '우주에 대한 탐구'라는 순수과학적 측면에서의 연구뿐 아니라 우주 관련 기술 개발에도 노력하고 있다.
우선 국제위성항법장치(GPS) 기준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우주환경이나 우주를 감시하는 것도 천문연이 하는 일이다. 아울러 중소기업 지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소기업협력센터를 선임부장 직속 부서로 설치했으며 중소기업기술멘토링 사업과 은퇴과학자가 참여하는 중소 애로기술 해결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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