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이용한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등장으로 우체국 집배원들의 업무도 진화를 거듭하며 '사회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강원 영월우체국 김민규 집배원이 오토바이로 우편물 배달에 나서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 영월(강원)=윤경현 기자】 예전에는 주로 편지를 통해 소식을 전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 당시만 해도 편지 한 통을 들고 대문을 두드리는 집배원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지금은 정보기술(IT)의 발달과 함께 전화나 e메일, 더 나아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이 대신하면서 집배원의 편지배달 업무는 크게 줄었지만 사회복지서비스와 택배 등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특히 시골에서 근무하는 집배원들은 사회복지서비스와 연계해 고유업무 외에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전국에서 활약하는 집배원은 모두 1만2000여명이며 지난해 기준으로 약 44억2800만통의 우편물을 배달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지난 19일 아침 강원 영월우체국에서 김민규 집배원(36)을 만났다. 4년차 집배원인 그의 하루는 오전 7시50분에 시작됐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신문을 일반우편물 사이에 끼워넣는 것이다. 이어 택배와 등기우편물에 대한 분류작업을 하고 나서야 커피 한 잔 즐길 여유가 주어졌다.
■하루 취급 우편물만 최대 1600통
기자가 오토바이 뒷자리에 실린 빨간통을 가리키자 "대략 900통의 우편물이 들어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평상시보다 배 가까이 많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매달 10일이 넘어가면서 각종 고지서 발송이 증가해 23∼25일에 절정을 이룬다"며 "주민세 고지서와 전화요금 고지서가 겹쳤을 때는 하루 1500∼1600통까지 배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집배원은 "요즘에는 손편지가 하루에 1∼2통 있을까 말까 한다"며 "그나마 군대 간 아들과 주고받는 편지이거나 관할구역에 포함된 교도소 재소자들의 편지"라고 설명했다. 나머지는 세금 및 각종 요금 고지서, 홈쇼핑 카탈로그, 신문 등이다.
영월우체국에서는 집배원이 택배업무까지 처리해야 한다. 이상호 영월우체국장(55)은 "시골에서 택배사업은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그나마 우체국은 국가기관이라 손익을 안 따지니까 그렇지 돈으로 계산할라치면 다 없애든지,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국장은 "다른 택배업체들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우체국에 와서 택배를 다시 맡기는 광경도 흔히 볼 수 있다"며 "택배업체 입장에서는 시골 구석구석으로 일일이 배달하려니까 기름값이나 인건비가 훨씬 더 나오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영월우체국의 경우 전체 집배원 12명 가운데 2명이 각각 트럭을 몰고 다니면서 택배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하지만 차가 들어가기 힘든 곳은 다른 집배원들이 오토바이를 이용해 배달하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영월우체국 집배원들에게는 추석을 앞둔 열흘 정도가 1년 중에 제일 바쁘다. 김 집배원은 "택배 대여섯개만 실어도 오토바이가 꽉 찬다"며 "이럴 때는 열 번, 스무 번이라도 반복해 오가면서 배달해야지 별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침에 택배 물량이 가득 쌓인 것을 보고는 '언제 다 배달하나' 하고 탄식을 하지만 그날 저녁 때가 되면 모두 없어지는 것을 보고는 '역시 사람의 능력이 참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엘리베이터 없는 6층 오르락내리락
오전 9시30분께 '부르릉' 하는 빨간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김 집배원의 배달업무가 시작됐다. 오전에 먼저 배달할 지역은 영월 읍내다. 읍내는 어느 정도 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어 우편물 배달도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자의 순진한 '착각'이었다. 사실은 읍내가 더 힘들다. 김 집배원은 "시골집은 웬만하면 집 마당까지 오토바이가 들어가지만 읍내 주택가는 골목이 좁아 들어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걸어서 가져다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읍내가 힘든 점은 또 있다. 읍내 상당수의 주택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4∼6층 연립주택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오늘처럼 후텁지근하고 비까지 내리는 날이면 더 힘들다. 서너 번만 오르락내리락하면 우의 밖은 비로, 안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그제서야 오토바이 앞에 장화와 우의가 실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는 눈 오는 날보다 비가 오는 날이 더 싫다고 했다. 비가 오면 시야 확보가 잘 안 돼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김 집배원의 오토바이가 지나가자 여기저기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실제로 우편배달을 하다 보면 큰 개는 요주의 대상이다. 김 집배원과 같이 일하는 집배실장은 개가 무서워서 집주인에게 우편물을 전달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순해서 절대 물지 않는다'는 말에 선뜻 다가갔다가 물려서 병원 신세를 진 적도 있다. 김 집배원은 "개들이 유난히 오토바이 소리와 빨간색을 싫어하는 것 같다"며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면 십중팔구는 엄청나게 짖어댄다"고 말했다.
인터넷의 발달로 집배원들이 일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고객들이 택배 등의 위치를 인터넷으로 확인하고는 '몇 시에 오냐'고 몇 번씩 전화하는 것은 물론 예정된 시간을 10분이라도 넘기면 항의전화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이날도 그랬다. 불과 30분 전 방문 시 부재중이라 '내일 다시 찾아오겠다'는 스티커를 붙여놓았는데 고객은 '있었다'고 우기며 '당장 갖고 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1일 1회 배송이 원칙인데 안 해줄 수도 없고 이럴 때는 참 난감하다. 이 한 사람 때문에 줄줄이 배송일정이 늦춰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필 '엘리베이터 없는 연립주택 6층'이다. 그는 "아까 봐서 알겠지만 방문시 벨 두 번, 노크 한 번에 이어 '계세요'라고 소리친다"며 답답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고민하던 김 집배원은 결국 다시 발길을 돌렸다. 다행히 택배의 수취인과 타협을 통해 1층에서 만나 전달해주기로 했다.
집배원은 어려운 이웃을 발굴해 사회복지서비스와 연계시켜주는 역할도 한다. 강원 영월우체국 김민규 집배원(왼쪽)이 영월군 팔괴리의 김모 할아버지에게 안부를 묻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산길 2시간 올라 전화요금 고지서 배달
20여 차례 오토바이를 탔다가 내렸다가 하면서 우편물을 전달하다 보니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는 "시골집에는 어떻게 배달하는지 보여주겠다"며 평소보다 이르게 읍내 바깥으로 방향을 잡았다. 동강 건너편에 있는 팔괴리가 목적지였다.
맨 먼저 이모 할머니(75)의 집에 들러 전화요금 고지서 등 2통의 우편물을 전달하더니 이내 골목으로 사라져버렸다. 20여분이 지나 김 집배원을 다시 만난 곳은 400m가량 떨어진 경로당 앞이었다. 영월교도소와 여러 집에 배달을 하고 왔다는데 그새 그의 상의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편지 하나를 배달하기 위해 10∼15분이나 오토바이를 타고 좁은 시골길을 가야 할 때도, 1∼2시간씩 산길을 올라가야 할 때도 있고 심지어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도 있다. TV에 가끔 나오는 것처럼 산 속에 홀로 사는 사람들이 영월우체국 관내에도 꽤 있다는 것이다. 배달지가 지나치게 먼 산 속에 위치한 경우 입구에 우체통을 만들어두기도 하고 급한 우편물은 미리 전화로 연락해서 약속된 장소에 맡겨두기도 한다.
김 집배원은 "'어떤 이는 중간에 수취함을 만들어서 보관해두면 찾아갈 수 없겠나'라고 했더니 '우편물 받으면서 집배원을 만나는 게 유일한 즐거움인데 그냥 집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해서 그렇게 하고 있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2∼3분을 달렸을까, 김 집배원이 김모 할아버지(82)를 보더니 오토바이를 멈췄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 지적장애를 가진 손녀딸과 함께 사는데 할아버지도 장애2급에 귀도 잘 안들리신다고 전했다.
김 집배원은 "아들 딸이 6명이나 있지만 모두 어려워 도와줄 형편이 안된다"며 "이 집 어르신들이 밤새 안녕하셨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일과가 됐다"고 귀띔했다.
시계가 벌써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식사는 어떻게 할까' 물어보려는 순간 김 집배원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읍내에서는 사먹을 데라도 있지만 오늘처럼 외곽에 있으면 참을 수밖에 없다. 그는 "그래도 시골은 아직 정이 남아 있다"며 "어르신들 중에는 밥 먹고 가라는 분도 있고, 손수 삶은 감자나 옥수수를 건네주는 분도 있어 일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김 집배원은 '몇 시까지 배달한다'고 시간을 정해두지는 않는다.
우편물이 모두 주인의 손으로 넘어가야 끝이 난다. 다만 시골길이 좁고 위험한 탓에 해가 저물면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로 중단할 수밖에 없다.
그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면 내일 할 일이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에 '그만하고 가자'라고 할 수도 없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blue7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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