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이 과거에 비해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으면서 자신이 주체적으로 성을 안전하게 즐겨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여성은 생리상 성을 100% 즐기는 게 불가능하다. 미혼·기혼 여부를 떠나 원치 않는 임신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임신이 두려워 '결혼 전까지 성관계를 갖지 않겠다'는 미혼 여성도 적잖다.
콘돔을 사용하는 것도 한가지 방편이 될 수 있지만 여성도 함께 피임하는 '더블더치 피임'이어야 더욱 안심할 수 있다. 이때 주로 활용되는 게 경구피임약과 '사야나' 주사다.
피임약은 정상적인 여성이 임신을 피하게 해주는 합성여성호르몬제로 제품에 따라 성분·함량은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기본원리는 임신 중 배란·임신이 중지되는 것과 같은 원리를 이용한다.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인 에티닐에스트라디올, 레보노르게스트렐은 각각 여포호르몬(에스트로겐), 황체호르몬(프로게스테론) 두가지를 흉내내 합성한 것이다.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은 생체호르몬과 가장 유사한 화학구조를 가진 '드로스피레논'(성분명 드로스피레논·에티닐에스트라디올, Drospirenone·ethynylestradiol)을 주성분으로 한다.
경구피임약을 제대로 복용할 경우 피임효과는 99%이지만 시간 등 복용법을 신경 쓰지 않고 매일 복용하는 정도라면 평균 피임률은 92% 정도다. 약을 불규칙하게 복용하면 피임효과가 떨어짐은 물론이고 불규칙한 출혈(부정출혈)이 초래돼 불편하다. 또 호르몬제를 장기간 복용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여성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경구피임약은 이론적으로 초경 이후부터 폐경까지 복용할 수 있다. 악성 종양, 혈전, 천식, 고혈압, 우울증, 간질환 등 다른 위험요소가 없는 사람이라면 사용기간에 제한이 없다.
특히 난소암 등 여성암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경구피임약을 예방차원에서 처방받기도 한다. 방장훈 병원장은 "피임약을 5개월 이상 복용하면 난소암, 자궁내막암의 위험도가 40~50% 감소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가족력에 난소암이 있는 경우 도리어 예방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최대 단점은 '매우 번거롭다'는 것이다. 매일 같은 시간대에 규칙적으로 약을 복용해야 할뿐만 아니라 일정한 시간대를 정해 매일매일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빼먹으면 피임효과가 사라질까봐 스마트폰 등으로 알람을 맞춰 약을 챙겨먹는 여성도 있다. 방장훈 호산여성병원장은 "최근 처방되는 경구피임약은 저용량제제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하루만 빼먹어도 피임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피임약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생리 주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다. 만약 중요한 면접, 시험, 대회 등 스케줄이 잡혔는데 생리날짜와 겹친다면 약물을 복용해 미룰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생활이 불규칙하거나 약물복용을 자주 깜빡해 피임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은 주사피임제를 고려해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사야나'(SAYANA, 성분명 메드록시프로게스테론아세테이트 medroxyprogesterone acetate)로 기존 미레나·임플라논 등 이식형 피임기구에 함유된 황체호르몬 제제를 주성분으로 한다. 한번 주사로 효과가 3개월간 지속돼 매일 복용해야 했던 기존 경구피임약보다 편리하다. 또 이 제제는 자궁내막증으로 인한 통증을 관리하는 용도로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승인받았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을 개선하는 목적으로도 사용된다.
방장훈 병원장은 "사야나 피임법은 미국·독일·네덜란드 등 여러 국가에서 출시된 보편적인 피임법이지만 국내서는 이제 막 홍보에 나서는 단계"라며 "처음에 도입됐을 때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괜찮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점점 호평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매일 약을 따로 챙겨먹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선호된다"며 "처음엔 여성들이 약을 먹기 어려운 환경에 놓일 수 있는 출장, 바캉스 등에 대비해 단기적 목적으로 이 피임법을 썼지만 이후에도 만족도가 높아 경구피임약 대신 이를 지속적으로 이용하겠다는 뜻을 보이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사야나 피임법은 피하주사로 시행된다. 3개월(12~14주)에 1회씩 앞쪽 넓적다리나 복부에 주사한다. 다른 피임약을 복용하다가 이 주사제로 피임 방법을 변경하고 싶다면 마지막 활성 성분을 사용한 날짜로부터 1주일 이내에 1차 주사를 놓아야 한다. 이 피임법은 출산 후 2개월부터 시술할 수 있고, 안전한 피임이 보장된다.
가격적인 면에서도 경구피임약보다 경제적일 수 있다. 경구피임약은 한 번에 처방비 최대 1만5000원과 약값 2만원대로(약국에 따라 다름) 대략 3만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사야나 피임법은 1회 주사 시 6만원 선으로 3개월간 효과를 볼 수 있다.
다만 생리주기를 맞춰주는 효과는 없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생리'가 변수다. 주기가 불규칙한 사람은 이를 고려해야 한다.
방장훈 병원장은 "사야나의 황체호르몬 단독 제제가 갖고 있는 문제점인 '부정출혈'이 흔히 관찰되지만 몸에 별 무리가 없는 경우 덜컥 임신되는 위험보다 훨씬 안전하다"며 "경구피임약은 '생리주기 조절'이, 사야나 피임법은 매일 먹는 불편이 없다는 게 장점이므로 둘 중 자신이 편하게 느껴지는 피임법을 골라 사용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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