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34)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정지궤도복합위성 체계팀

[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34)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정지궤도복합위성 체계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정지궤도복합위성 체계팀이 시스템 관련 회의를 하고 있다. 이들은 지상 3만6000㎞에서 한반도의 기상·해양·환경을 관찰하는 정지궤도위성 2기를 개발 중이다. 이나영·진경욱·최정수·김형완 선임연구원, 최재동 팀장(왼쪽부터). 사진=김범석 기자

우주가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인공위성 개발을 비롯한 우주기술들이 통신방송서비스, 재해.재난 정보제공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돼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을 가능하게 해준다. 아폴로 우주비행선의 디지털영상처리기술은 자기공명영상(MRI)과 컴퓨터단층촬영(CT) 장치를 개발하는데 사용됐고 우주비행선의 자동 랑데부와 도킹기술, 인공위성 원격탐사기술은 라식수술기와 엑시머레이저 시술시스템을 만드는데 이용됐다.

우주기술 개발은 수입대체, 연관산업 활성화, 신규서비스 시장 창출 등 국가경제에도 크게 기여한다.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의 경우 1호에 이어 2호를 개발하면서 위성영상 및 지상국 수출 등에 따른 수출증가 효과는 37.2배, 고용창출 효과는 3배가량 높아졌다.

우리나라에서 인공위성을 만드는 곳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다. 지난 2011년 7월부터 총사업비 6697억원을 들여 기상·해양·환경관측용 정지궤도위성 2기를 개발 중이다. 오는 2018년 상·하반기 각각 1기를 쏘아올리는 것이 목표다. 지난 15일 오전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위치한 항공우주연구원에서 최재동 정지궤도복합위성 체계팀장(47)을 만났다.

[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34)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정지궤도복합위성 체계팀
최재동 항우연 정복위성 체계팀장


■2년 반 동안 설계에 매달려

인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체계팀이 뭐하는 곳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취재약속을 하면서도 '체계'라는 단어가 내내 궁금했던 터였다. 최 팀장은 "집 전체의 그림을 그리는 일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기획, 설계 등을 뭉뚱그린 부서다. 부품의 규격이나 외국산 부품과 국산 부품이 잘 맞는지를 검토·확인하는 것도 체계팀의 업무다. 설계가 최종 확정될 때까지는 시험과 수정의 무한반복이다.

"지상에 있는 물건은 언제든 고칠 수 있잖아요. 그러니 마음 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주에 올라가는 위성은 한 번 보내면 말 그대로 '끝'이에요. 검증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발사 날짜를 정해놓고 문제가 생기면 손해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최 팀장과 함께 체계팀에서 일하는 인원은 모두 23명. 이들이 3년 가까운 시간 하루 12시간씩 땀흘리며 일궈낸 결과물은 설계도 한 장이 전부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비웃을 법도 하지만 최 팀장은 "당초 계획된 시간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며 "급하게 마음 먹으면 지쳐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어렵고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낮에는 회의가 많아 주로 밤에 일하게 된다"며 "야근수당은 따로 없지만 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라고 저녁은 배불리 먹여준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최 팀장이 만들고 있는 위성은 2010년 발사된 천리안에 이은 우리나라 두 번째 정지궤도위성이다. 들어가는 부품은 어림잡아 10만개, 부품의 집합체인 모듈만 따져도 수백개에 달한다. 온전히 우리 힘으로 만들려니 어려움이 많은 것은 당연지사다. 더구나 사용자인 미래창조과학부, 해양수산부, 환경부, 기상청의 눈높이도 높다. 한마디로 '나사(미국 항공우주국)은 하는데 우리는 왜 못하느냐'는 식이다.

"천리안은 외국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습니다. 당시 저도 2년이나 프랑스 툴루즈에 있는 아스트리움사에서 일을 했어요. 하지만 기술보안을 이유로 우리는 철조망 바깥에 있는 컨테이너에서 머물렀습니다. 정작 주요 설계는 철조망 안쪽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말이죠. 말이 공동개발이지 견제가 상당히 심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은 한 번만 같이 만들면 다음에는 국산화를 한다'면서 도면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물론 화상회의마저 거부하는 외국기업도 있습니다."

탑재체의 성능이 높아지면서 대규모 설계변경이 두 차례나 이뤄졌다. 몸체의 무게도 당초 2.5t에서 3.5t으로 늘었다. 최 팀장은 "무게와 부피가 커지면 몸체도 커져야 한다"며 "팀원들이 '또 설계를 바꾸자는 사람 있으면 가만 안 둔다'고 할 정도로 민감해져 있다"고 말했다.

고도 600∼800㎞에 떠 있는 저궤도위성은 발사 후 5∼10분이면 발사체가 분리되지만 정지궤도위성은 30분이 지나야 분리된다. 고도 200∼300㎞ 정도에 올려놓으면 약 1개월에 걸쳐 지상 3만6000㎞에 있는 제자리를 찾아간다. 위성 전체 무게의 60%를 연료가 차지한단다. 최 팀장은 "그래서 정지궤도 위성은 발사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며 "이 사업도 발사비가 1500억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위성 자세 잡기… 떨림 보정기술

최 팀장이 지구 상공에 떠 있는 정지궤도위성들의 위치가 그려진 그림을 꺼냈다. 대부분이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하늘 위의 영토전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일종의 지도다. 반대로 태평양 바다 위에 해당하는 서경 142도에서 174도 사이는 텅 비었다. 사용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는 탓이다.

정지궤도는 둘레가 26만4790㎞나 되지만 정지위성이 사용할 수 있는 궤도의 수용능력은 약 300기에 불과하다. 다른 위성과 충돌하지 않고 통신간섭을 피하기 위한 최적의 수용상태로, 위성 1기당 0.1도(가로 72㎞·세로 72㎞)는 확보돼야 한다.

최 팀장은 "소위 '강남땅'이라 불리는 인구밀집지역은 자리 잡기가 치열하다"며 "우리 주변의 일본·중국·러시아는 이미 수십개씩 확보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먼저 위성을 올린 나라에 기득권이 있어 그 옆자리를 차지하려면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빈자리가 생기면 반드시 6개월 내에 채워야 기득권을 유지할 수가 있는 탓에 다른 나라에서 임무가 종료된 위성을 사서 그 자리를 채우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위성궤도의 교통정리를 하는 자리가 지금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회의다. 최 팀장은 "정지궤도위성은 궤도와 주파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발사하기 7년 전에 위성을 올리겠다고 신청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지궤도라고 하나 모든 것이 멈춰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초속 3㎞의 초고속으로 움직여야 궤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구가 완전 둥근 모양이 아니기 때문에 위성은 지구중력에 따라 동이나 서로 조금씩 이동하게 된다. 정지궤도위성이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셈이다.

특히 모터와 태양전지판 등이 작동하고 카메라의 셔터 노출시간이 4.5초나 되는 탓에 위성의 떨림을 보정하는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최 팀장은 "지상 3만6000여㎞에서 보면 한반도는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하다"며 "위성이 0.06∼0.07도만 틀어져도 지상에서는 약 40㎞의 오차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위성의 몸체는 대부분 국산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필요 유무에 따라 60%만 국산을 쓰고 나머지는 해외에서 구입한다. 그러다 보니 부품에 설계를 맞춰야 한다. 그나마도 외국업체들은 "살려면 사고 말려면 말아라"는 식의 고자세여서 가격을 깎는 일도 쉽지 않다.

최 팀장은 "누군가 '국산화를 왜 안 하느냐'고 물으면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핵심부품은 국산화가 바람직하지만 국내에서는 일부 부품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다"며 "자칫 외국에서 100원이면 살 부품을 국산은 200∼300원을 줘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으로는 부품을 납품받아 조립시험에 들어가게 된다. 내년 상반기 지상모델이 나오면 문제점을 수정하고 하반기에는 설계를 최종 확정하게 된다. 이후 제작과 시험, 발사 후 궤도상 시험까지 체계팀의 임무는 계속된다. 최 팀장은 "진짜 고생은 지금부터"라고 말했다.

오후 3시가 되자 체계팀 일부가 회의실에 모였다. 시스템 관련 회의를 한다고 했다. 10분여를 참관했지만 모두 외계에서 쓰는 용어들이라 비전문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결국 '수고하시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서울로 발걸음을 돌렸다.

■1992년 '우리별 1호' 쏘며 세계 22번째 위성보유국에 올라.. 작년 나로호 성공발사로 중대 전환점

1990년대 초 우주개발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우리나라는 짧은 우주개발 역사에도 위성체, 발사체 기반기술이 선진국과 견줘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위성체 분야는 과학기술위성,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 통신해양기상위성(천리안) 등 다양한 개발 경험을 쌓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2년 8월 소형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발사하면서 세계 22번째 인공위성 보유 국가가 됐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95년 8월에는 국내 최초의 통신방송위성인 무궁화1호를 발사했다. 위성방송, 케이블TV 중계, 비상재해 통신 등 첨단 위성통신과 방송 서비스가 제공된 것도 이때부터다. 무궁화위성은 6호(2010년 12월)까지 발사됐으며 현재 3·5·6호가 지상 3만5786㎞에서 지구궤도를 돌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2006년 7월 발사된 아리랑2호는 1m급 해상도를 갖춘 800㎏급 저궤도용 정밀 실용위성이다. 아리랑2호가 고도 685㎞에서 촬영한 영상들은 해양오염, 자원탐사, 농업재해 모니터링, 해양 적조 감시, 정밀지도 제작 등에 활용되고 있다.

2010년 6월 발사된 천리안은 국내 처음으로 개발된 정지궤도위성이다. 천리안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 정지궤도 해양위성 보유국, 세계 7번째 독자 기상위성 보유국, 세계 10번째 통신위성 자체 개발국 등의 타이틀을 얻게 됐다. 같은 해 8월 쏘아올린 아리랑5호는 국내 최초로 영상레이더(SAR)를 탑재해 야간은 물론 악천후에도 고해상도로 지구를 관측할 수 있다. 지상 550㎞ 상공에서 공공안전, 국토.자원관리, 재난감시 등에 활용되는 영상정보를 수집하며 수명은 5년이다.

발사체 분야에서도 큰 성과를 거뒀다.
2009년 6월 전남 고흥에 나로우주센터를 완공, 세계 13번째로 우주센터를 보유하게 됐다. 또 2009년 8월, 2010년 6월 연이어 실패의 쓴 맛을 봤던 나로호 과학위성이 지난해 1월 발사에 성공, 우리의 우주개발사업은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비록 1단 액체로켓엔진을 러시아에서 들여오긴 했지만 우리가 개발한 2단 로켓 및 페어링, 위성, 각종 전자장비 등으로 구성된 상단에 대한 비행검증을 성공리에 수행함으로써 자력 발사체 개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