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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도서정가제, 가격거품부터 빼야

말 많은 새 도서정가제 시행방안이 그제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새 정가제는 예정대로 오는 21일부터 전면 시행된다. 발간된 지 18개월이 넘은 구간(舊刊)과 초등학교 학습참고서 등 기존 정가제에서 빠졌던 도서까지 모두 할인 폭을 최대 15%(마일리지 5% 포함)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출판사 간, 서점 간 지나친 가격경쟁의 틈바구니에서 파탄지경에 몰린 영세 사업자를 살리자는 게 취지다. 새 정가제가 시행되면 '반값 할인판매' 등으로 타격을 입고 있는 동네서점들이 숨을 돌릴 수 있다. 또 구간과 실용서의 온·오프라인 서점 간 판매가격 차이가 줄고 공공기관 납품 도서도 '제값'을 받을 수 있어 출판사의 수익성도 좋아진다.

그런데도 새 정가제의 수혜자인 동네서점 등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동네서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서 소비자의 책값 부담만 키워 도서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동네 서점들은 이 정도 처방으론 '약발'이 극히 제한적이라고 주장한다. 영세한 탓에 온라인 서점이나 대형 서점처럼 15%까지 할인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카드.통신제휴 할인, 경품 제공, 무료배송 등의 '무기'를 앞세운 온라인 서점과 경쟁도 안 된다. 독과점에 따른 출판생태계 파괴를 막겠다는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새 정가제 시행에 앞선 폭탄세일의 후유증도 문제다. 온라인 쇼핑몰 등 오픈마켓과 출판사의 북카페들은 새 정가제 시행을 앞두고 구간 등을 90%까지 경쟁적으로 할인판매하고 있다. 재고떨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문제는 새 정가제로 할인이 제한되면 소비자가 체감하는 책값 부담은 상대적으로 커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책 구매심리가 식어 대형 서점과 대형 출판사는 물론 동네서점과 소규모 출판사도 거래절벽을 피할 수 없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새 정가제 도입으로 권당 가격이 220원가량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이는 평균적 수치일 뿐 기존 할인율이 컸던 구간이나 실용서 구입자에게는 더 큰 부담이 된다. 동네서점도 살리지 못하고 책 구입 부담만 가중시켜 되레 도서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

새 정가제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법적·제도적 시행 절차가 마무리된 만큼 거스를 수는 없다. 그러나 취지를 살리고 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불완전한 새 정가제가 시행되더라도 더 촘촘한 후속조치가 필요하다. 도서구입을 촉진하기 위한 출판 및 유통업계의 노력이 우선이다. 정가 책정에서 관행화된 가격 거품을 걷어내고 근본적으로 생산과 유통 과정 중 비용절감에 나서야 한다.
학생들의 교육기회 불평등을 부를 수 있는 초등 학습참고서 가격 거품을 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정부도 온·오프라인 서점 간 공정경쟁 유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시행 과정에서 엄청난 부작용과 논란을 빚고 있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을 교훈 삼아 새 정가제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정부와 출판업계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수요 없는 공급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