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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39) 900m 땅속 막장에 '보안관'이 떴다

산업통상자원부 동부광산보안사무소 광산보안관



[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39) 900m 땅속 막장에 '보안관'이 떴다
산업통상자원부 동부광산보안사무소 이광국 부소장(왼쪽)과 중부광산보안사무소 장영덕 부소장이 강원 태백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에 대한 안전점검을 마친 뒤 조치사항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윤경현 기자

【 태백(강원)=윤경현 기자】 우리나라에도 '보안관'이 있다. 미국 서부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굵은 시가를 입에 물고 허리에 총을 차고 다니며 악당을 응징하는 영화 속의 그 보안관은 아니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수백개 광산의 안전을 책임지는 '광산보안관'이다.

광산보안관은 광산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즉각 출동해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한다. 광산보안법에 의해 모든 광산에 대한 채굴 중단, 광업주 및 보안관리자에 대한 처벌 등의 권한을 갖고 있어 광산업계에서는 '저승사자'로 불린다.

하지만 광산업이 한창 잘나가던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각광을 받던 광산보안관도 석탄산업의 사양화와 함께 기피직종으로 전락했다. 100명 안팎이던 광산보안관은 30년이 채 안 돼 현재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광부가 아니지만 사실상 광부들과 같은 환경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1일 강원도 전 지역과 경북 일부(울진·봉화)의 광산에 대한 보안관리를 맡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동부광산보안사무소를 찾았다.


[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39) 900m 땅속 막장에 '보안관'이 떴다
산업통상자원부 동부광산보안사무소 소속 광산보안관들이 장성광업소에서 안전점검을 벌이고 있다.


광산보안관 경력 29년의 이광국 동부광산보안사무소 부소장(57)은 인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우리가 관할하는 대표적인 광산을 경험하러 가자"며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로 기자를 이끌었다. 그러면서 광산보안관들은 일주일에 서너 차례씩 지하 수십, 수백미터의 광산을 들락날락한다는 얘기를 곁들였다.

중부광산보안사무소에서 지원을 나온 장영덕 부소장(51)과 광산보안관 3년차의 이현석 동부광산보안사무소 주무관이 동행했다. 장 부소장은 민간에서 일한 6년을 합쳐 무려 32년을 광산 안전에 바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지하 수백미터 막장이 일터

장성탄광은 작은 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었다. 지난 1950년 11월 석탄공사가 생긴 이후 60여년 동안 8667만4000여t에 달하는 석탄(무연탄)을 캐냈다. 지난해 생산량은 56만5000t. 1970년대 말에는 한 해 200만t이 넘는 최대 생산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최근 '무한도전'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유재석과 차승원이 '극한 알바(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찾은 곳이기도 하다.

한쪽 건물에 붙은 '안전제일(第一) 생산제이(第二)'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곁에 있던 이 부소장이 "옛날에는 '증산보국(增産報國)'이라는 문구였었는데 안전을 강조하면서 바뀐 것"이라고 알려줬다.

"과거에는 광산이 생산을 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갱도가 무너지거나 광부가 다치는 것에 대한 대비가 미흡했죠. 비용과 시간을 아끼려고 안전대책을 적당히 눈가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어요. 광산보안관이 정기 또는 수시로 실시하는 보안점검에서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해 사고가 우려되는 갱구를 폐쇄한 것처럼 위장하거나 비교적 안전한 막장을 점검받는 일도 있었죠."

갱으로 가는 길은 복잡했다. 속옷까지 모두 갈아입은 후 안전을 위한 헬멧과 길을 밝혀줄 램프, 탄가루를 막아줄 마스크도 착용했다. 탄광 관계자는 "절대로 라이터 등 인화물질을 소지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갱도를 따라 걸어가자 찬바람이 불어왔다. 장 부소장이 '점퍼를 꼭 입으라'고 했던 이유였다. 장화를 신은 데다 바닥이 울퉁불퉁해 걸음걸이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이런 길을 680m나 걸어가야 지하로 가는 케이지(일종의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단다. 이 부소장은 "무작정 걷는 것이 아니다"라며 "안전수칙 준수 여부와 함께 설계도를 들고다니면서 상·하 작업장 간격은 잘 유지하는지, 화약류 취급은 잘 하는지 등을 살펴본다"고 말했다.

10여분이 지나 케이지 앞에 도착했다. 케이지는 우리를 지하 900m의 세상으로 데려다줄 참이었다. 장성광업소 관계자는 "속도가 초속 7m로, 서울 여의도에 있는 63빌딩 엘리베이터보다 배 가까이 빠르다"고 자랑했다.

잠시 덜컹거리는가 싶더니 2분이 채 안돼 케이지가 멈췄다. 밖으로 나오자 보안담당자가 '안전'이라는 구호와 함께 인사를 하고는 소지품 검사를 실시했다. 장 부소장이 "이제부터는 땀을 흘릴 테니 점퍼를 벗는 게 나을 것"이라고 했다.

장성광업소 측에서 다양한 경험을 위해 특별히 작은 기차처럼 생긴 인차(人車)를 태워주기로 했단다. 이 부소장은 "눈으로 갱의 안전을 직접 확인해야 하는 데다 작업에 지장을 줄 수도 있어 평소에는 인차를 거의 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탄가루에 눈·코·입 막혀

인차를 탄 시간은 5분을 넘기지 못했고 다시 걷기가 시작됐다. 꼬불꼬불한 갱도를 따라갈수록 길이 좁아져 허리를 올곧이 펴기가 불가능했다. 탄가루가 날려 한 치 앞을 가늠하기가 어렵고 땀이 흘러 마스크는 자꾸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게다가 갱도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여기저기에 박아놓은 나무들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튀어나오는 바람에 아찔한 순간을 몇 번이나 넘겨야 했다.

장 부소장은 "처음에는 사람이 지나다닐 정도로 길을 만들지만 압력이 커지면서 공간이 줄어든다"며 "이런 악조건 속에서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보완 요청을 하려면 마스크를 벗어야 하니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날은 2∼3일 동안 목에서, 코에서 탄가루가 계속 나오기도 한다"고 하소연했다.

그 얘기가 끝나자마자 이 부소장이 심 부소장을 향해 지적사항을 조목조목 열거했다. '석탄 등을 나르기 위해 갱도에 설치돼 있는 컨베이어벨트가 작업자들의 통행에 불편한 것은 물론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곳곳에 튀어나온 나무들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 등의 내용이었다.

이번에는 가파른 경사에 설치된 계단으로 내려갔다. 잡을 것도 없는 터라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보안관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능숙한 발걸음이었다. 한참을 힘들게 내려왔건만 "불과 20여m를 내려온 것뿐"이라는 이 부소장의 말에 다리가 풀리고 말았다.

다시 허리를 숙인 채 한참을 가서야 채탄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막장'에 도착했다. 출발점이 해발 600m였는데 서있는 곳은 그보다 975m 아래다. 1시간 반에 걸쳐 3㎞가량을 이동해 지하 375m까지 온 셈이다. 기온을 재보니 영상 31도다. 가만히 서있는 데도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턱턱 막힌다.

이 주무관이 갖고 있던 가스점검기를 작동시켰다. 갱 안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메탄가스 농도를 측정하기 위한 것이다. 다행히 농도는 0.12%에 불과했다. 이 주무관은 "가스농도가 1.5%를 초과하면 작업을 중지한다"며 "유독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폭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옆에 있던 이 부소장이 "메탄가스 농도가 1%가 되면 탄층에서 이미 가스가 새고 있다는 얘기"라며 "금세 수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대피하기 힘들다"고 거들었다. 그는 "보통 농도가 5∼15%면 폭발을 일으키는데 9.5% 정도에서 가장 세다"며 "메탄가스가 폭발한 후 발생하는 일산화탄소는 폭발성에 유독성까지 갖춰 더욱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장성탄광에서는 2012년 작업자가 담배를 피우다 가스가 폭발하는 바람에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광산에서 가스 다음으로 무서운 것은 물이다. 장 부소장은 "갱내에서 지하수가 터지기도 한다. 고압의 물이 물폭탄처럼 터지면 철제 빔이 휘어진다"며 "사망자가 생길 경우 신원을 알아보기 힘들 만큼 처참한 광경을 연출한다"고 말했다.

■휴일 없이 24시간 비상대기

장성탄광의 갱도는 무려 260㎞에 이른다. 장 부소장은 "갱도가 거미줄처럼 층층이 연결돼 있다"면서 "이렇게 큰 광산은 2∼3명의 보안관이 한꺼번에 투입돼도 하루 만에 점검을 끝내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상적으로 하루 5∼6㎞를 걷는데 오늘처럼 하부까지 내려가는 경우 10㎞ 가까이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장 부소장은 "과거에는 도시락을 갖고 와 광부들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도시락 뚜껑을 열면 탄가루가 수북이 앉아 밥에 고추장, 김치, 물을 섞은 '물말이'를 만들어 마셨다"며 "요즘에는 배가 고파도 참고 웬만하면 나와서 먹는다"고 말했다.

그는 "생리현상은 현장에서 해결한다"며 "대부분은 광차에서 큰일을 해결하는데 간혹 작업을 안 하는 갱도를 찾아가 일을 보다가 산소 결핍으로 쓰러져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 부소장은 정작 광산에서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은 익숙함에서 오는 '매너리즘'이라고 지적했다. 대다수 광부들이 오랜 기간 일해온 사람들이라 타성에 젖어 매일 하는 일, 매일 지나다니는 길이라고 생각해 위험성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광산보안관이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는 휴일이 따로 없는 데다 항상 비상대기 상태라는 점이다.

사고가 터지면 5분 안에 광산보안사무소로 연락이 온단다. 이 주무관은 "일과가 끝난 뒤 동료들과 술 한 잔을 해도 사무실 번호나 모르는 번호가 휴대폰에 뜰까봐 불안하다"며 "24시간 긴장 속에 산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장 부소장은 "세월호 침몰 사고 등으로 안전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현실은 여전히 차갑다"며 "안전과 시설에 대한 투자가 더 이뤄져야 하는데 생산에 투자하는 것도 벅차 예산 반영이 잘 안된다"고 안타까워했다. blue73@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