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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기업정서까지 후진시킨 '땅콩 리턴'

[차장칼럼] 기업정서까지 후진시킨 '땅콩 리턴'

'기업인'상(賞)에 얽힌 일화가 있다. 2000년대 중반 정부부처와 경제단체가 손잡고 어렵게 'OOO 기업인'상을 만들었는데 3회도 안 돼 단명한 일이 있었다.

첫 수상자는 장고 끝에 모 기업의 설립자 고 A 회장을 선정했고, 두 번째는 지방 중소기업의 대표가 받았다. 세 번째 수상 후보자는 식품업계 굴지의 장수 기업을 일군 B 회장이었다. 하지만 삼고초려에도 한사코 수상을 고사했고 이듬해 예산확보가 안 돼 이 상은 흐지부지 사라졌다. B 회장은 경영능력뿐 아니라 고매한 성품과 겸손하고 검소한 생활 등으로 덕망이 높아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총리 후보로 거론됐던 인물이다. 올해 창립 기념사에서도 직원들에게 '겸손'을 강조했을 정도다. '기업인도 영웅으로 대접받는 시대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수상자의 이름을 딴 도로까지 만들 만큼 야심차게 진행했던 당시 '기업인'상은 겸손 앞에 용두사미가 됐다.

그런데 요즘 '땅콩리턴' 사건으로 B 회장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얼마 전 재계 관계자는 "최근 10여년간 기업호감도 평균 점수(100점 만점)가 50점도 안 된다. 부정적인 단면들이 더 부각돼 올해도 반기업정서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B 회장처럼 존경받는 재계 인물에 대한 조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토로했다.

사실 대중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연예인과 체육인들은 많지만 재계는 그렇지 못하다는 게 세간의 평이다. 과거 정경유착 등 부정적 단면들이 국민에게 나쁜 기업이미지를 심어놓은 게 지금에 이르고 있고, 이 때문에 대기업들이 수조원 규모의 사회공헌활동과 일자리창출, 지역경제 활성화 등 사회적 책임에 적극 나서도 한번의 잘못으로 경제성장에 기여한 모든 공(功)이 쉽게 가려지곤 했다. 최근 땅콩리턴 사건이 기업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도 후진시킬까 재계가 우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회지도층의 적절치 않은 언행은 지탄받아 마땅하나 이를 그릇된 반기업 정서로 몰아가는 것도 문제다. 개인과 기업의 과오를 구분치 않고 관련 업체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과 흠집내기, 불매운동 등은 혁신이 요구되는 시대에 자칫 기업가 정신을 퇴보시킬 수 있다. 수출국가에서 경제성장의 동력인 '기업'을 반감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한국 경제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는 짙어질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 수인(囚人)의 몸이 되거나, 각종 소송으로 대규모 투자 등 주요 경영현안 판단에 제약을 받고 있는 기업인들에 대해 선처를 호소하는 것도 누구를 두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기감 때문이다. 평준화된 품질과 가격경쟁력으로 한국을 맹추격 중인 중국, 슈퍼엔저로 국내 수출기업을 위협하고 있는 일본, 좀처럼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내수시장 등 한국기업들은 안팎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재계 1위 삼성의 실적 충격이 한 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잘못이 '반기업·반재벌 정서'로 확산돼 지금까지 정부가 손톱 밑 가시로 지목한 각종 규제들의 완화 정책에 제동이 걸리고, 기업들의 사기가 꺾인다면 우리 스스로 골든타임에 성장동력을 끄게 되는 패착이 될 수 있다. 땅콩리턴 사건이 기업인들뿐 아니라 국민의식도 함께 성숙해지는 계기가 돼야 하는 이유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