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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데스크 칼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대박을 터뜨린 영화가 꼭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좋은 소설이 반드시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오히려 예술적으로 뛰어난 영화나 소설은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서 사장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어두컴컴한 극장으로 불러들인 영화에는 그 나름의 흥행 요인이 있게 마련이다. 그 이유를 작품 내부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더러는 작품 외적인 이유로 인해 흥행 대박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다. 영화 흥행의 사회학이 가능한 이유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한때 '충무로 흥행사'로 불렸던 한 감독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일간신문 문화면이 아니라 사회면에 기사가 나와야 영화가 대박을 터뜨린다. 500만~600만 관객을 모으는 것은 영화의 힘으로 가능하지만 1000만 관객을 동원하기 위해선 뭔가 다른 힘이 작용해야 한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하거나 거기에 버금가는 흥행몰이를 위해선 영화 자체의 힘을 넘어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동안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사회면 운운한 그 감독의 말에 수긍이 간다. 첫 1000만 돌파 영화인 '실미도'(2003년)는 그동안 금기시됐던 북파 공작원을 전면에 내세웠고, 사극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1000만 돌파에 성공한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는 하찮은 신분의 가짜 왕이 오히려 더 위민(爲民)하는 모습에 관객이 열광했다. 지난여름을 뜨겁게 달구며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 반열에 오른 '명량'(2014년)도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영화 속 대사가 유행하면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리더십의 부재와 이른바 '이순신 리더십'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이하 '님아')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영화 안쪽을 들여다보면 거기엔 사랑과 눈물이 있다. 소녀 감성의 89세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로맨티스트 조병만 할아버지가 펼치는 알콩달콩 사랑 이야기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고른 호응을 얻으면서 관객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님아'가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면서도 20~30대 젊은 관객에겐 영화 속 사랑 이야기가 현실에선 불가능한 판타지처럼 보인다는 사실도 역설적이다.

'님아'가 사랑의 기록이자 죽음의 기록이라는 사실도 놓쳐선 안 된다. 제작진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백수(白壽·99세)를 앞둔 할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두 부부는 이별을 준비하고, 결국 님은 '그 강'을 건너고 만다.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할머니가 "먼저 가서 좋은 데 자리 잡고 데리러 와요. 그러면 둘이 손잡고 같이 갑시다"라고 말할 때 객석은 울음바다가 된다.

영화 바깥쪽으로 눈을 돌리면 거기엔 영화 속 이야기와는 정반대로 흘러가는 우리 시대의 세태(世態)가 놓여 있다. 인스턴트식 사랑과 이혼의 증가, 가족 해체 같은 검은 그림자가 그것이다. 어두컴컴한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76년간 해로한 노부부의 사랑과 삶과 죽음을 지켜보면서 우리, 혹은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찾아 헤매고 있는 건 아닐까.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