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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원로에게 듣는다] 박승 前 한국은행 총재 "기업이 돈 벌 수 있게 규제 풀라.. 그 열매를 국민과 나눠라"

[경제원로에게 듣는다] 박승 前 한국은행 총재 "기업이 돈 벌 수 있게 규제 풀라.. 그 열매를 국민과 나눠라"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가장 편한 모습으로, 그러나 매우 분명한 어조로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리 있게 짚어냈다. 박 전 총재는 "성장과 분배 개혁은 하나의 '세트'로 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사진=서동일 기자


'가계 빈혈증, 가계 경색.'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보는 우리 경제의 최대 취약점이다. 과거 수출경제에서 이제는 내수로 경제성장을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하는 시점인데도 대한민국은 소비하지 않는다. 엄밀히 표현하면 소비할 수 없는 사회가 됐기 때문이라는 게 박 전 총재의 진단이다. "기업이 성장하도록 가능한 모든 규제를 풀어줘라. 과격한 노동운동은 안 된다. 그 대신 성장의 과실이 가계로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정부가 소득순환에 적극 나서야 한다." 또 "여야는 성장구조개혁(규제개혁)과 분배구조개혁에 대해 대승적 차원에서 협력해야 한다. 정부 역시 성장과 분배가 따로 가는 정책이 아닌 하나의 정책 패키지로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올해 한은의 기준금리 정책에 대해선 "추가 인하는 곤란하다"면서 신중할 것을 주문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예고된 데다 저금리가 한국 사회를 저수익, 노인경제 구조로 이행시킬 것이란 우려를 나타냈다. 그가 힘줘 말하는 문구들은 하나의 원을 형성했다. 논리의 완성이었다. 경제수석으로, 한은 총재로, 대학 교수로, 이론과 현실을 넘나들며 겸비한 경제분석과 정무적 감각은 날카롭고 예리했다. 인터뷰는 세밑 서울 평창동 박 전 총재 자택에서 진행됐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간 재정확대 정책을 구사했으나 박근혜정부 집권 3년차인 새해부터는 구조개혁 추진을 강조하고 있다. 일부에선 부동산 대책과 가계대책 등에 있어 정책 혼선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평가는.

▲지금 박근혜 대통령 밑에 어떤 브레인(참모)은 정부가 발표한 각종 '성장정책'과 '분배·환류 정책'을 하나의 세트, 말하자면 '패키지'로 묶어 국민에게 제시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건 메시지 관리다. '이렇게 해서 기업을 키우겠다. 그러하되 성장의 과실은 나누겠다'는 메시지가 나와야 한다. 안타까운 건 성장과 분배정책이 각각 따로 제시되니 성장을 돕는 규제개혁은 야당에서 비협조적이고, 성장의 과실을 서민에게 순환시키는 건 여당에서 비협조적이다. 얼마 전에도 문희상(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추미애 의원을 만나서 제발 정부 연금개혁, 절대 옆에서 발목 잡지 말라고 했다.(웃음) '성장구조개혁'과 '분배구조개혁'은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서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설득력이 있다. 난 이념적으로 중립이다. 성장을 중시하는 건 새누리당 쪽이고, 분배도 해야 한다는 입장은 야당(새정치민주연합)쪽에 가깝다. 내가 주장하는 건 야당이 정부의 성장정책에 협조하라는 거다. 기업이 뭘 좀 하려고 하면 야당이 발목을 잡으려는데 그러지 말고 대기업이 충분히 돈 벌고 활동할 수 있도록 국민과 국가가 길을 열어주자. 그 대신 그렇게 번 돈은 지금까지 기업이 혼자 썼는데, 혼자 쓰지 못하게 정부가 세금으로 거둬다가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입장이다.

―최근 이주열 한은 총재를 만났나.

▲지난주(12월 넷째주)에도 집 앞 경복궁역에서 술 한 잔 했다.(웃음)

―만나면 금리 얘기도 하나. 지난 하반기 두 차례나 내리지 않았나.

▲내 개인적 의견으로는, 이 총재 만났을 때 2%까지는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내 말 듣고 한 건 아닐 게다. 중앙은행은 정부와 협조할 필요는 있다. 일부에선 한은 독립성 훼손이니 해서 나쁘게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독립성만 확보된다면 한은도 (경제살리기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새해 미국의 금리인상이 우리 경제의 주요 변수인데, 한은이 금리정책을 어떻게 가져가야 한다고 보나.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우리도 금리 인상을 준비해야 할 거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현 수준(기준금리 2.0%)에서 인하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만일 변동한다면 인하보다 인상에 대해 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3%대 중반)보다 높기 때문에 금리정책이나 돈 푸는 정책은 맞지 않다. 지금 기준금리 2%라면 충분히 경기부양적이다. 더 이상의 금리인하는 곤란하다. 지금은 돈을 풀어도 소비.투자와 같은 실물 변수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시대다. 또 자본유출에 대한 위험과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가계부채가 걱정돼 구조조정하고, 고정금리로 바꾼다 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내리고 돈을 푼다? 그건 이른바 '병 주고 약 주는 정책' '갈지(之)자 정책'이다. 오히려 서민을 위해선 금리가 4~5%는 돼야 한다. 지금은 (실질)성장률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소득순환이 안되는 문제에 봉착해 있다.

―저금리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저금리일수록 경제는 '노화구조'로 가는 것이다. 제로(0) 금리, 1~2%대 금리란 뭘 해도 이익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일본이 제로 금리다. 기금을 만들어봐야 운영도 안 되고 저축도 안하는. 제로금리라는 건 '제로수익 사회'라는 얘기다. 그건 '죽을 날 받아놓은 노인경제'를 말한다. 이건 꼭 써달라. 제로금리 사회는 경제수익이 제로가 되는 '노화 경제구조'다. 전셋값 폭등, 서민생활 어려움. 이 모든 건 저금리의 악순환 탓이다. 적어도 금리가 3% 이상이어야 활력 있는 경제다. 미국도 앞으로 3~4%까지 올릴 것으로 보인다.

―최근 경기상황이 안 좋다. 디플레이션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디플레는 아니다. 우리가 처한 문제는 '성장침체'가 아니라 '민생침체'다. 지금 우리 경제는 민간소비로 경제성장률이 결정되는 단계에 와있다. 그러나 현재 가계는 '빈혈증'을 앓고 있다. 가계부채는 증가하는데 기업이익은 가계로 수혈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5년 전만 해도 경제성장률이 7%이면 가계소득 증가율도 7%, 기업소득 증가율도 7%였다. 성장의 선순환이며 균형성장이었다. 지금은 경제성장 3%, 기업소득 증가율 16%, 가계소득 증가율은 1%다. 가계부채는 1000조원이 넘었다. 부채상환을 뺀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마이너스다. 다시 말해 현 우리 경제 문제의 본질은 소득순환의 문제다. 뇌에 피가 오지 않을 때 뇌경색이 오듯 가계경색이다.

―소득순환 해법으로 대기업 사내유보 과세 필요성을 가장 먼저 제기했는데.

▲사내유보과세는 국내에선 내가 맨 처음 주장했다. 2013년 6월 28일 사단법인 창조와 혁신 강연에서였다. 대기업이 과다 유보한 이익을 과세해 가계에 수혈하자, 소득순환을 정상화하자고 주장했다. 상당한 곤욕을 치렀다. '기업 사내유보금 중엔 공장 설비 등으로 투자한 것도 있는데 사내유보가 마치 현금으로 쌓아놓기만 하는 줄 아느냐' '한은 총재까지 지낸 사람이 그것도 모르냐'는 식의 공격도 받았다. 그것(설비투자)을 제하고도 투자하지 않고 현금으로 가지고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게 내 주장의 요지였다. 정부가 이를 기업소득환류세제로 반영한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번에 내놓은 경제정책 중 가장 정곡을 찌르는 핵심 정책이라고 본다. 이 같은 시각에서 김종인(가천대 석좌교수)과 내 경제민주화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김종인이 보는 경제민주화란 대기업의 각종 행위를 합리적이고 공평하게 하도록 하고, 대기업이 독과점하지 못하게 하는 데 중점을 둔다면, 나는 그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면 규제도 대폭 풀고 좀 너그럽게 봐주자. 그 대신 대기업이 번 소득을 서민에게 환류시키자는 게 핵심이다.

―디플레는 아니라고 했지만 일본은 경제살리기를 위해 35조원 규모의 재정정책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우리도 추경 등 인플레 정책을 펼쳐야 하는 것 아닌가.

▲최 부총리는 돈을 더 풀면 안 된다. 돈 푸는 경기부양책은 잠재성장률이 실질성장률보다 낮을 때 디플레이션 갭을 메우기 위해 하는 거다. 정부는 새해 경제성장률이 3.8%, 소비자물가지수는 2.0%가 될 것으로 발표했다. 한국 경제 잠재성장률은 3.5%가량인데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성장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잠재성장률'이다. 지금은 잠재성장률을 4~5%대로 높이는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구조개혁이 그 답이다. 정부가 단기 경기부양책에서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구조개혁으로 전환한 건 잘한 일이다.

―구조개혁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인데, 박근혜정부 3년간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규제개혁, 공기업개혁 등 구조개혁을 꼭 성공시켜 달라고 하고 싶다. 특단의 개혁의지를 가지고 대처해야 한다. 노동시장·연금개혁은 강력한 의지로 밀어붙여야 한다. 과격한 노동운동은 안 된다. 소위 귀족노조나 노조 보호하에 있는 정규직이 비정규직 처우개선 문제를 공유하도록 하도록 해야 한다. 사학연금과 군인연금 개혁도 그대로 추진해야 한다. 종교인 과세도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또 가계를 살리고 민생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나서서 소득순환을 바로잡아야 한다. 기업 성장을 통해 세수를 늘리고, 기업이 투자 하지 않으니 정부가 나서서 다리도 놓고, 학교도 지으며 투자를 대행해 민생경기를 살려야 한다. 이를 위해 증세의 결단을 내려주길 바란다. 법인세.소득세.부가세도 올려서 담세율을 현재 20%대에서 23%가량으로 올려서 100조원의 추가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선진국 평균 담세율은 26% 이상이다. 담세율을 올리지 않고는 복지정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무원연금 개혁 방향은.

▲한국의 기성세대인 우리들은 잘살기 위해 지금까지 줄곧 후손을 희생시켜 왔다. 과거 부동산 값을 많이 올려서 많은 사람이 부동산으로 재산증식을 했다. 이건 후손이 집을 마련을 할 수 없게끔, '후손의 빈곤화'라는 결과를 낳았다. 연금 역시 같은 얘기다. 우리 세대가 낸 것보다 더 받음으로써 후손이 더 내야 하는 이 구조를 고쳐야 한다. 왜 어렵게 사는 국민이 공무원연금을 대신 지급해야 하는가. '낸 것만큼 받도록'해야 한다. 또는 '더 내고 더 받아가든지, 덜 내고 덜 받든지'. 후대에 기대지는 말아야 한다.

ehcho@fnnews.com 조은효 박소연 기자



[경제원로에게 듣는다] 박승 前 한국은행 총재 "기업이 돈 벌 수 있게 규제 풀라.. 그 열매를 국민과 나눠라"

■박승 전 총재는.. 금리·한은개혁 과감히 추진했던 실용주의 경제원로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79)는 스스로를 '이념적으로 중립적'이라고 정의하는 실용주의 경제원로다. 인터뷰 내내 에둘러 말하기보다 분명하고 확신있게 자신의 논리를 펴는 모습에서 한은 총재시절 시절(2002년 4월~2006년 3월)의 과단성이 느껴졌다. 국민의 정부 마지막 해인 2002년 한은 총재에 임명된 그는 이어 참여정부에서도 총재직을 수행했다. 박 전 총재는 한은 총재로선 최초로 시장과 본격적으로 대화한 인물로 꼽힌다. 서울 강남과 강북의 개발 불균형, 교육 문제 등 다양한 사회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으며, 때로는 반대진영으로부터 공격의 화살을 맞기도 했다. 재임 중 부동산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자 3차례에 걸쳐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기도 했다. 한은 개혁 역시 그의 과단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밖으론 한은의 독립성 확보였으며, 내부적으론 한은의 보신주의 타파에 주력했다. "그 정도면 80점은 되지 않느냐"는 그에게 딱 하나 아쉬운 점은 '화폐개혁(리디노미네이션)'. 당시 달러화나 엔화에 비해 원화 화폐단위가 크다는 목소리가 커지며 개혁을 추진했지만 뜻을 이루진 못했다. 앞서 노태우 정부 당시엔 청와대 경제수석과 건설부 장관을 지냈다.

△뉴욕주립대 경제학 박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청와대 경제수석 △제22대 건설부 장관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한국경제학회 회장 △제22대 한국은행 총재